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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나’는 할 수 없지만 ‘우리’는 할 수 있어

[토요판] 김선희의 학교 공감일기

⑧아이들의 인성을 논하기 전에

“선생님, 오늘 수업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어요.” 예영(가명)이가 비장한 표정으로 음악실에 남았다. ‘작은 별’ 주제(한 곡을 이루는 중심 악상)를 변주해 리코더로 합주하는 ‘우리도 모차르트’라는 활동의 모둠을 편성한 날이었다. “무슨 일이 있니?” “저희 모둠에 음악 잘하는 아이가 별로 없어요. 특히, 진구(가명)는 무임승차할 게 뻔해요.” “아… 시작부터 맥이 빠지겠네.” “네, 무엇이든 빠짐없이 다 잘하고 싶은데, 이번 모둠 구성을 보는 순간 다 포기하고 싶어졌어요.” “저런… 가장 걱정되는 점이 뭔지 좀 더 알고 싶다.” “저는 작곡에 워낙 관심이 많고 리코더 연주도 자신 있어요. 이번 기회에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왜 진구처럼 열의 없고 연주 실력도 부족한 아이랑 같은 모둠이 되어야 하나요? 애써 좋은 변주곡을 작곡한다 해도 합주가 제대로 될까요? 된다 해도 제가 한 노력에 다른 아이들이 쉽게 편승하는 거잖아요.”

예영이는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다른 아이들이 네 실력과 열의를 따라가지 못할까 봐 걱정되는구나. 그럼에도 함께 좋은 성적을 받을까 봐 억울한 마음도 들고…”라며 아이의 마음을 다시 짚어보았다. “네, 그래서 저는 모둠활동이 정말 싫어요.” “싫을 만도 하네.” 아이는 나의 적극적인 공감으로 북받친 감정에서 조금씩 놓여나는 듯했다. “다른 친구들하고는 차차 마음 맞춰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매사에 의욕이 없는 진구만큼은 도저히 호흡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아요. 진구라도 다른 모둠으로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예영이는 모둠활동의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마음가짐을 보이면서도 끝내 진구는 거부했다. 학업뿐 아니라 사회성 발달도 늦어 교우관계에서 소외된 진구에게는 마음을 열기 어려운 모양이다. “예영아, 이 활동을 통해 저마다 지닌 다른 특성이 음악의 다양한 요소에 닿아 생각하지 못했던 새 작품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을 거야. 수업을 통해 평소 어울리지 않던 친구와 교류하는 소중한 경험도 쌓게 되고… 나는 연주 수준보다 서로 다른 특성을 조화하고 협력해나가는 과정에 관심을 두고 지도할 테니, 당연히 평가도 거기에 맞춰야겠지. 네가 용기를 낸다면 특별한 관심으로 지켜보며 적절히 도울게.” 예영이는 “네, 그럼 일단 한번 해볼게요”라며 돌아갔다.

각자의 역할에 맞춰 변주된 성부를 연습하는 단계에서 진구에게 모종의 역할을 당부하던 예영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예영이네 모둠의 변주곡은 거의 모든 성부가 장식 선율로 복잡했다. 기본적인 운지법도 서투른 진구는 그 어떤 역할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너희 모둠은 모든 성부의 가락에 많은 변화를 주었구나. 한명은 주제 선율을 맡는 게 어때? 주제감을 살리면서 기본박을 짚어내는 효과도 있을 듯해.” 아이들은 조언을 반기면서도 서로 눈치를 보았다. 주제는 워낙 단조로운 동요 선율이니 시시해서 맡기를 꺼린 것이다. “이건 진구가 맡아보면 어떨까?” 내 제안에 진구가 고개를 끄덕이자 예영이가 흥을 내며 말했다. “선생님, 진구가 어려워하면 제가 가르쳐줄 수 있어요. 저희들끼리 해볼게요.” 예영이는 진구 옆으로 자리를 옮겨 리코더 운지법부터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음표에 계이름을 써주고 박자도 짚어주며 개인지도를 하다시피 했다. 진구는 교사의 지도에 비해 훨씬 의욕적으로 따랐다. 몇주 후 예영이네 모둠은 개성 있고 조화로운 ‘작은 별 변주곡’을 발표해 큰 호응을 얻었다.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여럿이 함께 만든 변주곡이 멋지지 않던가요? ‘나’는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처럼 짧은 시간 안에 이런 멋진 곡을 완성하기 어렵지만 ‘우리’니까 할 수 있었어요. 맞죠?” 하고 묻자 아이들이 “네” 하고 힘차게 답했다. 예영이의 눈빛은 그 누구보다 두드러지게 빛났다.

흔히들 ‘요즘 아이들은 너무 이기적이야’라고 말한다. 인정 욕구가 한창 많은 성장기 아이들은 사회나 어른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늘 노심초사한다. 아이들의 이기심을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하기 전에, 우리가 아이들의 어떤 면을 바라보며 길러주려 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른 사람의 부족한 면을 이해하고 감싸며 함께 살아가길 바란다면 온갖 경쟁 시스템에서 커오느라 팍팍하고 편협해진 아이의 마음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인성은 지식으로 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대하는 사회와 어른의 태도를 통해 자연스럽게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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