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 거르고 라모스 안만나려다 은성에게 혼나네

LG 3번타자 채은성, 29일 KIA전서 3점포
20타점으로 리그 4위, 1점차 접전에서 12타점
"올 시즌 용택 선배에게 큰 선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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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30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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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KIA전에서 쐐기 3점포를 치고 환호하는 채은성. / 뉴시스

29일 광주에서 열린 LG와 KIA의 시즌 1차전. 2-1로 앞선 8회초 LG는 2사 3루의 기회를 맞았다. 타석엔 2번 타자 김현수. KIA는 김현수를 자동 고의사구로 1루로 내보내며 다음 타자인 채은성과의 승부를 선택했다.

KIA 입장에선 올 시즌 득점권 타율 전체 1위(0.579)의 김현수를 거르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날 10호 홈런을 때려내며 리그 홈런 선두를 내달리는 4번 타자 로베르토 라모스까지 승부를 이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3번 타자 채은성을 택한 것은 합리적인 결정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는 ‘타점 머신’ 채은성의 클러치 능력을 간과한 선택이었다. 자신과의 승부를 택한 것에 자존심이 상할 법도 했던 채은성은 KIA 투수 고영창의 바깥쪽 투심을 공략해 오른쪽 담장을 넘겼다. 3점 홈런. 무리하지 않고 결대로 밀어친 타법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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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은성에게 홈런을 맞고 나라잃은 표정을 하고 있는 서재응 KIA 투수코치. / KBS 중계화면 캡쳐

채은성의 시즌 4호 홈런에 힘입어 LG는 KIA를 6대2로 꺾고 5연승을 내달렸다. 류중일 LG 감독은 “불안한 리드를 하고 있었는데 채은성이 8회 3점포를 쳐주면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채은성은 “현수 형이 너무 좋아서 나랑 상대할 줄 알고 있었다”며 “대기타석부터 타격 타이밍을 잡으면서 잘 준비한 것이 홈런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KIA의 선택을 후회하게 만든 채은성은 상대 팀이 겁을 낼 만한 타자다. 그는 LG의 역대 한 시즌 최다 타점 기록 보유자다. 2018시즌 타율 0.331, 25홈런을 치면서 무려 119타점을 쓸어담았다. 작년엔 반발력이 줄어든 공인구의 영향 등으로 12홈런 72타점으로 기록이 뚝 떨어졌다.

그런데 올해 다시 채은성의 타점 능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채은성은 20타점으로 KIA 터커(24타점), 두산 페르난데스(22타점), 팀 동료 라모스(21타점)에 이어 타점 4위에 올라 있다. 국내 선수 중엔 1위다.

4할대 타율(0.407)에 15타점을 기록하며 맹활약 중인 2번 타자 김현수와 역대급 홈런 레이스를 펼치는 리그 최강의 4번 타자 라모스 사이에서 채은성이 3번을 치면서 얻는 반사이익도 있다는 분석이다. 상대가 김현수를 거르고 라모스를 만나지 않기 위해 채은성에게 정면 승부를 들어가다 ‘한 방’을 맞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면 승부를 한다고 누구나 ‘한 방’을 칠순 없다. 채은성은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고 있다. 그는 올 시즌 3번 타순에서 18타점, 5번과 8번에서 각각 1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득점권 타율도 0.375로 높은 편이다. 특히 2사 득점권 상황에서 0.417의 고타율로 8타점을 뽑아냈다. 1점차 이내 접전 상황에서 기록한 타점도 12개나 된다. 영양가 만점의 활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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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은성은 2014년 5월 삼성전에서 배영수를 상대로 1군 무대 첫 안타를 기록했다. 당시 양상문 LG 감독은 첫 안타구에 '大선수가 되세요'라고 적어주었다. 그 말대로 채은성은 큰 선수가 되어가고 있다. / 중계화면 캡쳐

2009년 LG 육성선수로 입단해 2014년부터 1군에서 활약하며 ‘연습생 신화’를 이룬 채은성은 지난해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홈런을 때려내며 팀 승리에 기여했다. 하지만 팀이 시리즈 전적 1승3패로 탈락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의 꿈을 또 한 번 뒤로 미뤄야 했다.

채은성은 누구보다 열심히 올 시즌을 준비했다. 자신의 별명인 ‘은별이’처럼 스프링캠프 때부터 새벽별을 보며 운동을 시작했다.

눈부신 타점 행진으로 LG 상승세를 이끄는 채은성의 목표는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롤 모델’ 박용택 선배에게 꼭 좋은 선물을 드리고 싶다는 것. 한국시리즈 우승만큼 좋은 선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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