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PD의 방송 이야기] 뉴스의 주인공 '어깨걸이'
by 조선일보 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입력 2020.05.30 05:00
뉴스 제작진이 방송을 준비할 때 가장 까다롭게 생각하는 건 무엇일까? 챙길 게 수십 개인 마당에 하나만 꼽긴 어렵지만, 그래도 고르라면 '어깨걸이'도 후보지 싶다.
'어깨걸이'는 쉽게 말해 앵커의 배경 화면을 말한다. 뉴스를 전달하는 앵커 뒤로 사건 관련자 얼굴이나 사진 등이 나타나는 그래픽이 '어깨걸이'다. 원래는 DVE(digital video effect)라고 불러야 하는데, DVE는 '중계용' '출연용' 등 종류가 많아서 편의상 '어깨걸이'라 부른다. 주로 앵커 어깨 옆에 이미지가 표현돼서 그렇다.
이 '어깨걸이'가 까다로운 이유는 뉴스의 핵심 내용을 한눈에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또 화면 전체에 짧으면 10초, 길면 1분 이상 노출되는 만큼 주목도도 상당히 높다. 시선을 끄는 만큼 '어깨걸이' 실수는 그 파장도 엄청난데, 가령 모자이크 실수가 그렇다. 가려야 할 사건 관계자의 얼굴이나 서류의 인적 사항이 그대로 노출되면 신상이 강제 공개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당사자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치명적인 실수다. 그래서 만약 필요한 모자이크가 빠졌다면 빈 화면을 띄우더라도 절대 방송해선 안 된다.
생방송 때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간혹 '어깨걸이' 순서가 안 맞아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앵커는 열심히 코로나 내용을 설명하는데, '어깨걸이'엔 떡하니 국회 외경 같은 완전히 다른 그림이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땐 얼른 제 것을 찾아 바꿔야 하지만, 그게 여의치 않으면 앵커가 "코로나 소식은 잠시 후에 알아보고, 먼저 국회 소식부터 전해드리겠다"며 '어깨걸이' 순서를 따라간다. 앵커의 순발력에 감사를 해야 할 순간이다.
'어깨걸이'에 보안이 요구될 때도 있다. 큰 특종의 경우 작은 단서라도 외부로 유출되면 안 되기 때문에 '어깨걸이' 제작도 애를 먹는다. 그래서 아주 기본 밑그림만 준비해 놓고 핵심 인물 사진은 방송 직전 올린다든지, 아예 '어깨걸이'를 여러 개 만들어 특종을 감춘다. 귀찮지 않을까 생각되겠지만, 무사히 특종이 방송될 때면 첩보 작전이 성공한 듯 희열이 느껴진다. '어깨걸이'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뉴스의 가치를 올려준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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