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남의 삶 엿보기

by

입력 2020.05.30 05:00

https://image.chosun.com/sitedata/image/202005/30/2020053000062_0.jpg
이한수 Books팀장

수필 또는 산문이라 할 에세이는 지면에 주요하게 채택되는 경우가 드뭅니다. 문학의 영토에선 적자(嫡子)로 대접받는 소설에 밀리고, 지식 제공이란 측면에선 역사·인문서에 떨어지고, 시대에 대한 이해나 실용 방면에선 경제경영서나 자기계발서만 못한 것처럼 보이니까요.

기억에 남는 수필이 여럿 있습니다. 앞 세대 것으로 김용준 '근원수필', 변영로 '명정 40년', 이희승 '딸깍발이' 등이 떠오르네요. 피천득을 빼놓을 수 없지요. 수필 '엄마'에서 "내게 좋은 점이 있다면 엄마한테서 받은 것이요, 내가 많은 결점을 지닌 것은 엄마를 일찍 잃어버려 그의 사랑 속에 자라나지 못한 때문이다"라는 문장을 기억합니다. 시인이 쓴 산문이 시보다 더 좋다고 느낀 적도 있습니다. 조지훈 수필 중 술 마시는 이들의 등급을 열여덟 단계로 나눈 '주도유단'이나 해방 후 좌우 대립을 비틀어 "우익좌파는 막걸리당 빈대떡파"라고 했던 글을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정치인 되기 전 김한길이 쓴 수필 '눈뜨면 없어라'도 좋지요. 첫 아내와 결혼 생활 실패를 얘기하면서 "바꾸어 말하자면 이혼에 성공했다. 그때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한 대가로"라고 썼던 문장이 기억나네요.

진솔하게 쓴 에세이는 남의 삶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번 주 북스팀에 도착한 에세이는 10여종. '무인도에 살 수도 없고'(책읽는고양이), '서울에 내 방 하나'(해냄),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공명) 등입니다. 삶에서 저마다 느낀 지혜를 말하는 책이지만 이번 주에도 지면을 제대로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좋아요 0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제휴안내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