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예산 허리띠 졸라맨다더니 ‘예타 기준’ 낮추자는 민주당
더불어민주당이 정부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조정식 정책위의장은 최근 열린 21대 국회 당선인 워크숍에서 예타 대상 기준금액을 국고지원 500억원(현 300억원), 총사업비 1000억원(현 500억원)으로 각각 늘리는 국가재정법 개정 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주요 입법과제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예타 기준이 높아지면 심사 대상은 줄고, 예타 면제사업은 그만큼 늘어난다. 21대 국회 벽두부터 나라살림 심사에 눈감자는 법안을 추진하겠다는 민주당의 처사에 할 말을 잃는다.
예타는 1999년 처음 도입된, 일정 규모 이상의 국고지원 정부·민간 투자사업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이 검증·평가하는 제도이다. 경제성과 함께 국가정책에 부합하는지 등을 따져 예산이 엉뚱한 곳에 쓰이는 것을 막으려는 장치이다. KDI에 따르면 2018년까지 707개 사업에 대한 예타를 통해 절감한 사업비가 143조여원에 이른다. 올해는 SOC 예산이 22조여원에 달하고, 코로나19 대응 추가경정예산도 6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판 뉴딜도 추진해야 한다. 예산이 큰 폭으로 커져서 촘촘하게 가동해도 모자랄 거름장치를 되레 느슨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과거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재해예방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로 예타를 면제하자 강력히 저항했다. 19·20대 국회에서도 예타 기준 완화에 반대했다. 그런데 돌연 예타 기준을 낮추겠다고 방침을 뒤집었다. 정부와 민주당은 지난해에도 23개 정부사업의 예타를 면제해준 바 있다. 지방경제를 활성화하자는 취지이지만 토건에 기댄 케케묵은 경기부양책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예타 기준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역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경제활성화를 이유로 내세웠다. 재정규모 확대와 물가수준 등을 반영해야 한다고도 했다. 명분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예타는 사업을 제대로 하자는 것이지 사업을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 가계도 규모가 큰 지출은 더 꼼꼼하게 살핀다. 잘못되면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재정을 늘리면서도 “허리띠를 졸라매어 지출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한 것도 같은 이유다. 민주당의 예타 무력화 시도는 원칙에 어긋나는 하책이다. 추진을 멈추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