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55% "지원 필요하지만… 더 급한게 주 52시간·최저임금 개선"

[코로나 빅뱅, 위기와 기회] [1] 공격적으로 규제 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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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30 03:25 "우리에겐 1997년 IMF 외환 위기와 2008년 금융 위기를 극복해 한 단계 더 큰 도약을 한 경험이 있다. 이번 코로나 위기도 낭비하지 말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2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산업계 29개 단체가 모여 연 '포스트 코로나, 주력 산업별 비전과 과제' 포럼에서는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철강·기계·바이오 등 업종별 단체들이 나와 각 산업이 처한 위기와 도전 과제를 발표했다. 관통하는 일관된 메시지는 "위기를 낭비하지 말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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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 수출 59% 급감… 기약없는 기다림 - 29일 울산 북구 현대차 울산공장 야적장에 선적을 기다리는 자동차들이 빼곡히 주차돼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수요가 줄면서, 이달 1~20일 우리나라의 자동차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59% 급감했다. /뉴시스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장은 "시간 싸움이 시급한 연구·개발 분야 등에서 규제를 빨리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에선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14년간 1조원이 든다. 정 협회장은 "코로나 사태로 한국 바이오산업이 기회라고 하지만, 주 52시간 규제로는 로슈·화이자 같은 글로벌 제약사들을 우리가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또 "대기업은 악(惡), 중소기업은 선(善)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도 끝내야 한다"며 "노동자와 기업, 환경과 산업을 선악으로 나누어 보는 시각이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했다.

중국이 쫓아온다… 시간이 없다

반도체·디스플레이·조선(造船) 업종은 우리 기업들이 세계 시장 점유율 30% 이상을 차지하는 글로벌 선도 업종이다. 자동차·기계·철강·석유화학 등은 후발 주자이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독일·일본 등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중국의 추격이 심화되면서, 한국의 제조업은 언제 추월당할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김용석 디스플레이산업협회 단장은 "중국은 지난해 LCD 생산 능력에서 우리를 추월했고, 존망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위협이 되고 있다"며 "우리가 선도하는 OLED 매출 비율은 아직 20%대여서 모든 LCD의 대안이 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석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상무는 "중국 조선사들의 빠른 추격으로 글로벌 조선업은 한국·중국의 '2강 체제'로 가고 있다"며 "조선업은 정부가 얼마나 지원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는데 중국 정부의 공격적 지원이 무섭다"고 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우리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는 아직 그래도 중국과 기술 격차가 4~5년 있어 큰 위협은 아니지만,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70%를 자급한다는 목표로 2015년부터 170조원을 쏟아붓고 있다"며 "우리는 미국이 선도하는 시스템반도체를 추격해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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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업계는 더 위태롭다. 박현성 포스코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은 가장 빨리 코로나 사태에서 벗어나면서 생산을 재개하고 있다"며 "동남아에선 중국산 저가 제품과 출혈 경쟁이 불가피하고, 최근엔 국내까지 유입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바이오·자동차, 기회로 만들려면

이날 발표에선 코로나 사태가 기회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바이오업계는 2018년 1.8%에 불과한 바이오·제약 세계 시장점유율을 2030년 6%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오기환 바이오협회 전무는 "한국 바이오산업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큰 기회를 맞고 있다"며 "다만, 바이오산업은 장기간의 대규모 투자와 인재 양성 등이 필요하고 엄청난 규제 산업인 만큼, 정부가 규제를 과학화·합리화·선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전무는 "의약품을 개발하려면 약사법, 생명윤리법, 실험동물법, 화학물질관리법 등 수많은 법률을 따져봐야 하는데,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규제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동차 산업 역시 판이 흔들리는 지금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기 위해선 코로나 봉쇄 해제로 발생할 '수요 폭증'에 대비해 경쟁 업체들을 따돌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경영연구소에 따르면 내년 자동차 판매는 올해 대비 14.9%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주홍 자동차산업협회 실장은 "부품업계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저신용등급 회사채 매입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며 "또 수요 폭증에 대비해 자동차를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복기 특수(特需)에 대비해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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