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100세일기] 두 사람의 유언(遺言)을 통해 내가 배운 것
[아무튼, 주말]
by 조선일보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입력 2020.05.30 03:00 지난 5월 2일. 65년 전 제자이자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 초청을 받아 강연 갔을 때 만난 그 대학 K총장이 오랜만에 찾아왔다. K총장은 어릴 때부터 기독교 교육을 받았고 도움이 필요한 계층 젊은이들을 위한 교육가의 꿈을 안고 있었다. 그는 '사랑이 있는 교육이 우리의 희망이다'라는 신념을 굳히게 되었다는 뜻을 내게 전해 주었다. 가능하다면 북한 젊은이들을 돕고 싶었을 것 같다. 그 꿈을 실현하기 어려워지자 연변에 중국 최초의 사립대학을 설립했다.
그 기간 북한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국과 미국 등의 기독교 단체로부터 원조를 받아 가능했다. 서울 소망교회도 그 후원기관의 하나로 알고 있다. 여러 면으로 노력하다가 드디어 평양에 과학기술대학을 설립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 일에 몰입해 있을 때 북한 정보 당국의 오해를 받게 된 듯싶다. 그가 미국 국적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미국과 한국을 이롭게 하는 공작에 가담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을 받게 되었다. 그 결과로 K총장은 서울로 오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구속되어 조사받고 사형 선고까지 받게 되었다. 북한은 중국과 같은 개방정책을 경계하기 때문에 오해가 더 심각했을지 모른다. 사형 집행을 앞두고 마지막 유언장을 쓰게 되었다. K총장은 가족에게 남긴 말 외에 ①연변과학기술대학을 유지·성장시켜달라 ②미국 정부는 나를 핑계로 북한에 대한 정치적 보복을 하지 말아달라 ③내 신체는 아직 건강하니 장기는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시신은 해부학 연구에 써달라고 했다.
그러나 다행히 미 국무부의 노력으로 북한 정권의 양해와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는 석방되어 지금은 평양과학기술대학을 위해 계속 일하고 있다.
나는 그런 사실을 알게 되면서 대학생 때 일본 교수로부터 들었던 얘기를 회상해 보았다. 오래전 만주 지역에서 러일전쟁이 벌어졌을 때 일이다. 일본의 한 육군대좌(우리의 대령급)가 흑룡강 다리 폭파 사건으로 체포되어 러시아의 군법재판을 받고 사형당한 사건이 있었다.
그 대좌는 세 가지 유언을 남겼다. ①군복을 갖추어 입고 일본 천황 폐하께 경배하도록 허락해달라 ②나는 어렸을 때부터 크리스천이었다. 죽기 전 군목이나 러시아 목사로부터 안수기도를 받게 해주길 원한다 ③내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유산을 정리해 전쟁 때문에 생긴 러시아의 미망인이나 고아를 위해 쓸 수 있게 해달라. 그 내용을 전해 들은 러시아 장교가 "유산은 당신 가족을 위해 남겨두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권고했으나 "신앙인으로서 내 마지막 소원이기 때문에 가족들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며 번복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 그 역사적 사실이 일본에 전해졌던 것이다.
나는 신앙이란 그런 마음과 삶의 의미라고 믿는다. 사랑이 있는 한 알의 밀이 되는 인생 말이다. 그래서 사랑이 있는 교육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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