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도의 무비 識道樂] [173] We are already dead
by 조선일보 이미도 외화 번역가입력 2020.05.30 03:12 '인간성을 죽이는 건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 자신이다(War is the suicide of humanity).' 모든 전쟁 영화가 증언하고 있는 진리이지요. '영상 지옥도(地獄圖)'인 '사울의 아들(Son of Saul·사진)'에서 남성 주인공 사울은 한 강제수용소의 인간성 말살 역사를 증언합니다. '지옥'은 1944년 10월 아우슈비츠.
인간이 겪는 불행 중 최악은 뭘까요.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책 '역사'에 답이 있습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매우 잘 아는데도 상황을 바꿀 힘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Of all men's miseries the bitterest is this: to know so much and to have control over nothing).' 사울은 시체 처리 작업반원입니다. 헤로도토스 통찰대로 사울과 동료는 최악의 불행을 겪고 있습니다. 넉 달마다 작업반이 교체되는데 이틀 후면 자기들도 가스실에 끌려가 죽게 된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한편 유대인 시체 더미에서 숨이 덜 끊긴 소년이 발견됩니다. 극히 드문 사례여서 나치가 명령합니다. "해부하라." 사울이 의사에게 주장합니다. "제 아들입니다." 헤로도토스가 말했습니다. '평화로울 땐 자식이 부모를 묻는다. 자연의 순서를 깨트리는 전쟁 땐 부모가 자식을 묻는다.' 사울이 간청합니다.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주고 싶으니 시체를 돌려줘요." 거부당합니다. 동료들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사울은 목숨 걸고 시체를 빼돌려 장례에만 열중합니다.
"넌 사자(死者)만 위해 일할 뿐 우리 목숨엔 관심도 없는 놈이야(You failed the living for the dead)." 동료의 질타에 사울이 받아칩니다. "우린 이미 죽은 목숨이야(We are already dead)." 인간성을 짓밟힌, 혹은 그걸 스스로 내팽개친 자기들은 산목숨이 아니라는 울부짖음입니다. 소년은 정말 그의 아들일까요. 가려둡니다. 사울이 소년의 몸을 정성껏 닦습니다. 이는 죽은 자에 대한 예의인 동시에 그가 가스실에 들여보낸 수많은 유대인을 향한 속죄 의식입니다. 사울도 유대인입니다. 그가 장례를 무사히 끝마치게 될까요.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
좋아요 0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제휴안내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