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 직방'의 대가

'딱터김'의 병원 이야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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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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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

아는 변호사가 미국에 있는 자기 딸을 진찰한 의사를 두고 했던 말이다. 진찰료를 50달러(약6만원)나 받았다는 것. 피검사도 안 하고 입학 허가용 진찰소견서만 써주고 그랬다고. 한국서 동네 의원 다닐 때 몇천 원 냈던 것과 비교됐다.

어쨌든 우리나라는 진찰료도 싸고 의사 만나기도 쉽다. 게다가 병원 옮기기도 쉽다. 영국서는 주치의를 정해주고 다른 데로 함부로 옮기는 것을 국가가 막고 미국서는 보험회사가 차단한다.

동네 의원에서 기침약을 3일 먹다 안 나으면 다른 의원에 간다. 이전 병원 처방전을 안 갖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 처방 내용을 챙기기는 아주 쉽다. 환자용 처방전을 달라면 되고 안 주면 약국 제출 처방전을 스마트 폰으로 찍으면 된다. 요즘엔 약 봉투에도 쓰여 있어 그걸 들고 가도 된다.

처방전을 안 갖고 가면 두 번째 의사의 고민이 시작된다. 아니 고민 안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환자들이 이전에 다른 곳에 간 사실조차 말 안 할 때가 많아서다. 어쨌든 두 번째 의사의 전략 중 가장 쉬운 것은 약을 세게 많이 쓰는 것.

환자들 용어인 '효과 직방'의 기대에 부응한다. 한 알을 두 알로 증량. 항생제도 추가! 기침의 95%는 항생제가 불필요하지만 '변심고객'이라 얼른 만족시켜야 한다. 만약 이전에도 항생제를 썼다면 두 종류의 항생제에 노출된 것. 그만큼 약제 내성 세균의 출현가능성이 높아진다.

기침의 원인은 그것 말고도 많으니 다른 약도 추가다. 비염 콧물도 기침 원인. 콧물약 항히스타민제도 넣고 스테로이드도 쓴다. 또 만성기침일 땐 30%가 식도염이 원인이다. 강력한 위산억제제를 처방한다. 물론 기침 자체를 줄이는 진해제도 쓴다. 최대 4종 쓸 수 있다. 또 천식의 초기증상일 수도 있으니 기관지 확장제도 포함시킨다. 이제 약을 많이 먹어 속이 더부룩할까 봐 위장운동개선제도 쓰고. 처방전 안 가져간 대가가 상당히 크다. 물론 모든 의사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한국처럼 문턱 낮은 병·의원을 잘 이용하려면 지혜로워야 한다. 의사한테 정보를 많이 줘야 좋은 치료가 나오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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