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거래액 152배 쑥, "난 단순무식...인생도 앱도 심플하게"

[김미리 기자의 1미리] 김재현 '당근마켓'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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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30 03:00 | 수정 2020.05.3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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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IT 양대 산맥 카카오, 네이버를 거치고 두 차례 창업에 성공한 김재현 당근마켓 공동대표. 주변에선 “연타석 홈런 친 IT 천재”라고 했지만, 정작 그는 “사회성 떨어지는 단순무식한 개발자”라고 몸을 낮췄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마을 회관, 뒷동산, 앞동산…. 어디서 말씀 나눌까요?" 개울물 흐르는 시골에서 이장님을 만난 건가 싶다. 서울 테헤란로에 있는 스타트업 사무실에서 등장할 법한 낱말 조합은 아니지 않은가. "아, 회의실 이름이에요. 복사기 있는 공간은 문방구라 불러요." 후줄근한 셔츠, 운동화 차림의 김재현(41) 당근마켓 공동 대표가 순박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당근마켓은 요즘 장안의 화제 기업. '동네 이웃과 직거래하는 중고 마켓'을 콘셉트로 한 중고 거래 앱인데, 코로나 시대에도 이 회사 지표는 자고 일어나면 쑥쑥 자라는 성장기 어린이의 성장 그래프 같다. 지난달 기준 앱 누적 다운로드 1900만건, 한 달 이용자 700만명. 거래액은 2016년 46억원에서 지난해 7000억원으로 3년 만에 152배나 증가했다.

벤처캐피털 업계에선 김 대표를 두고 "연타석 홈런 친 긱(geek·천재)"이라고 했다. 국내 IT 양대 산맥 카카오·네이버를 경험하고, 창업 두 번을 성공적으로 이끈 인물. 그가 궁금했다.

단순 무식의 힘

―당근마켓에 간다니 채소 파는 가게냐는 반응이 있더군요.

"당근은 '당신의 근처'를 줄인 말이에요. 2015년 회사 만들고 직원 여섯 명이 이름 짓는 데만 한 달 공을 들였어요. 제가 내놓은 이름은 '완소비(완전한 소비)', 김용현(42) 공동 대표가 낸 이름은 '도시장터'. 당근마켓은 밀레니얼 여성 개발자 박선영님 아이디어였어요. 저희 '아재' 감성에선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말랑말랑한 이름이었죠." 당근마켓에서 거래자 평가 지수를 일컫는 '매너 온도'란 말도, 정겨운 회의실 이름도 이 직원 아이디어였다.

―직원들 말을 경청하나 봅니다.

"저희는 철저하게 수평적 구조를 지향합니다. 직급은 아예 없고 모두 영어 이름으로 불러요. 신입 사원도 저한테 '폴'이라고 불러요. '폴님'도 아니고 그냥 폴."

―왜 폴인가요?

"짧아서요. 제가 영어를 잘 못해요. 카카오 다닐 때 영어 이름을 써야 해서 제일 짧은 것 중 남아 있는 걸 골랐어요."

―꾸밈 없는 성격인가요.

"제가 단순 무식해요. 아내(국사 교사)는 저더러 늘 상식이 부족하다고 해요. 하하. 개발자들이 보통 그렇습니다. 컴퓨터가 입력한 대로 답이 나오는 기계잖아요. 컴퓨터한테 '너 오늘 기분은 어때' 이렇게 묻지 않죠. 정서적 교감이 없는 일을 하다 보니 성격이 무미건조해져요. 그런데 이 단순 무식함이 살아가는 데 종종 힘이 됩니다. 단순하니 인생을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뭐 있느냐는 태도가 생겼고, 무식하니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자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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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마켓 앱. 동네 인증을 하면 근처 사는 사람들이 올린 중고 물품이 뜬다.

―그런 태도가 일에도 영향 미치나요?

"기능을 최대한 단순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예컨대 저희 앱은 휴대폰 인증 없이 동네 인증만 하면 가입돼요. 물품 등록 과정도 간단하게 했고요. 이용 후기 보면 간편해서 좋다는 반응이 많아요. 그런데 단순하게 만드는 게 정말 힘들어요. 보안 등 보이지 않는 기술적 방어 로직을 더 철저하게 해야 하거든요." 세상사 복잡한데 마음 비우고 단순하게 살기가 더 힘든 것과 닮은꼴이다.

―IT 회사인데 '따뜻함'이 중요한 가치라고요?

"동네 이웃을 연결해 효율과 따뜻함을 만드는 지역 기반 플랫폼. 이게 저희 비전이에요. 서비스는 온라인으로 이뤄지지만 결국 서비스를 쓰는 이용자는 오프라인의 사람이에요. 동네 사람을 관찰하려고 초창기에 아파트 단지가 많은 판교에 사무실을 뒀어요. 직원이 열 명 있을 때인데 둘씩 짝을 지어 지역 맘들을 만나 '밥 토크'를 했어요. 밥 먹으면서 이용 후기를 듣는 거였어요. 조각 케이크 하나라도 선물해 드렸죠. 똑같은 글꼴로 된 온라인상 피드백보다는 말로 듣는 후기가 훨씬 생생했어요. 세세한 감정과 반응이 한 올 한 올 살아있으니까."

―여러 아이템 중 왜 '중고'였나요.

"물건 버리는 걸 정말 싫어합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비닐봉지도 씻어서 몇 번이나 다시 쓰셨어요. 재활용품 수거하는 날, 아파트 단지에 쏟아져 나오는 멀쩡한 물건을 보니 너무 아깝더군요. 마침 카카오 다닐 때 직원들끼리 안 쓰는 물건을 사고파는 사내 장터를 경험했어요. 직거래니 택배비가 안 들고 사기 위험도 없었어요. 이걸 확장해서 동네 사람들끼리 중고 물건을 직거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경험에서 우러난 아이템이었군요.

"자신이 실생활에 필요해서 만드는 서비스야말로 먹힌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이 둘(여섯 살, 아홉 살) 아빠다 보니 맘 카페에서 육아 용품 중고 거래가 활발한 게 눈에 들어왔어요. 지금 저더러 20~30대가 쓰는 데이팅 앱을 만들라고 하면 못 만들어요. 제 관심 대상이 아니니까요." "스스로 내 서비스의 고객이 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 당근 앱도 자주 쓴다고 했다. 아이디는 '쑥쑥나무'. 첫째 아이 유치원 첫 반 이름이다.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성덕(성공한 덕후).' 스타트업 관계자들 사이에서 김 대표는 이렇게 불렸다. 자신이 좋아해 몰두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다.

―언제부터 컴퓨터에 빠졌나요.

“1987년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73)가 삼성전자에서 만든 8비트 컴퓨터 ‘SPC-1500’을 사 오셨어요. 당시 가격이 100만원. 아버지 두 달치 월급이었어요. 동네에서 컴퓨터 있는 집이 저희 집밖에 없어서 친구들이 구경하러 몰려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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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채소 가게 사장이냐는 사람도 있었어요.” 당근을 들고 김재현 대표가 활짝 웃었다. 하지만 회사 이름 속 ‘당근’은 이 당근이 아니다 . ‘당신의 근처’를 줄인 말이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집안 형편이 넉넉했나 봅니다.

“아니에요. 가락동 근처 연탄 때던 13평짜리 아파트에서 빠듯하게 살았어요. 아버지가 고등학교 화학 선생님을 하시다가 관두고 가방 회사에 다니셨어요. 이후엔 택시 운전도 하셨고요. 컴퓨터는 아버지가 회사 일로 배워야 해서 사 오셨어요.”

전화번호부처럼 코드가 잔뜩 실린 게임 프로그래밍 책이 딸려 왔다. 아버지는 밤을 새워 꾸역꾸역 수천 줄을 입력해 게임을 만들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그게 ‘코딩’이죠. 어깨너머로 자연스레 프로그래밍을 배웠어요.”

―얼리 어답터였네요.

“첫 컴퓨터 이후 16비트, 32비트 컴퓨터가 나오는 족족 샀어요. 중고등학교 땐 PC 통신 컴퓨터 동호회에 빠져 용산 전자상가에 드나들며 컴퓨터 부품을 조립했어요. 그 무렵 CD 플레이어, 헤드폰 등 소형 기기들을 중고 거래했어요. 사기당할까 봐 불안해서 직거래 아니면 안 했던 기억이 있어요. 당근마켓 직거래 모델엔 그 경험이 자연스럽게 담긴 것 같기도 해요.”

지금도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를 보면 호기심이 발동한다. “2017년 테슬라 전기차가 한국에 공식 수입됐을 때 2호 구매자였어요. 소식 듣자마자 예약했는데 1호는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워낙 나서는 걸 싫어해 1호는 사양하고 2호로 해달라고 했어요(웃음).”

―부모님 교육 스타일은 어땠나요.

“어렸을 때 제가 공부하겠다고 불을 켜놓으면 아버지가 ‘원래 공부하는 애가 아닌데 왜 그러느냐’ 하시며 불을 끄셨어요. 늘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하면서 살아라’ 하셨어요. 내가 뭘 해도 아버지는 나를 믿어주실 거라고 생각했지요. 어렸을 때부터 맘속에 품은 말이 있었어요. ‘나는 나임을 기뻐한다.’ 남들 눈엔 부족해 보여도 자신감을 잃지 말자고 꼬마가 생각한 거예요. 아버지가 심어주신 자존감이었어요.”

초등학교 고학년 때 친구들과 한 달 동안 새벽 4시에 일어나 신문 배달을 한 적이 있다. 그때도 부모님은 간섭하지 않았다. “10만원을 벌었는데 돈 버는 게 정말 힘들다는 걸 그 나이에 알았답니다(웃음).”

IT 최전선을 누빈 천재 개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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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생 개발자인 김재현 대표가 사무실에 만들어 둔 시계. ‘저전력 이페이퍼’에 한국과 영국 시간을 코딩으로 입력했다.

창업은 이번이 두 번째. 첫 번째 창업은 지난 2010년 대학원(숭실대 전산학과) 동기 둘과 함께 셋이서 333만원씩 내 자본금 1000만원으로 만든 IT 회사 ‘씽크리얼스’였다. 이때 소셜커머스 정보 모음 사이트 ‘쿠폰모아’, 쇼핑몰 정보를 제공하는 ‘포켓스타일’ 등을 만들어 히트 쳤다.

그의 능력을 알아본 곳은 카카오. 2012년 카카오에서 57억원에 씽크리얼스를 인수해 대박을 터뜨렸다. 김 대표는 이후 카카오에 합류해 카카오 플레이스, 카카오 택시 등을 만들었다.

―천재 개발자로 통하던데요.

“절대 아니에요. 학창 시절엔 존재감 없는 학생이었어요. 졸업하면 삐삐를 만들 수 있으려나 싶어 정보통신공학과(동서울대 98학번)에 들어갔는데 졸업할 때 되니 삐삐가 사라지고 휴대폰이 대세였어요. 2003년 ‘네오엠텔’이란 회사에 입사해 피처폰에 들어가는 이미지 설루션을 개발했어요. 그러다 컴퓨터를 더 알고 싶어서 회사를 관두고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늦게 배운 공부가 정말 재미있어 야전 침대 두고 학교에서 숙식하면서 청강까지 했어요.” 2006년 ‘토필드’라는 DVB 셋톱박스 회사에 취직했다가 2007년 네이버 개발자로 스카우트돼 인물 검색 프로그램 등을 담당했다.

―네이버는 왜 나왔나요.

“2007년 미국에서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몸이 근질근질했어요. 퇴근 후 집에서 심심풀이로 앱스토어용 야구 게임 앱을 개발했는데 뭔가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 같은 예감이 들더군요.” 2009년 11월 말 아이폰 국내 출시에 맞춰 사표를 내고, 2010년 초 친구들과 창업한 게 씽크리얼스였다.

두 번째 창업은 카카오 동료였던 김용현 대표와 2015년 만든 ‘N42(당근마켓 전신)’. 처음엔 ‘판교 장터’라는 이름으로 판교 지역만 대상으로 했다가 전국 서비스로 규모를 확대하고 당근마켓으로 이름을 바꿨다. 김재현 대표는 기술적 부문을, 김용현 대표는 재무·회계 등 경영을 담당한다.

―카카오, 네이버. 한국 IT 양대 산맥을 다녔는데 만족이 안 되던가요. 왜 취직-창업-취직-창업을 되풀이했나요.

“첫 직장 ‘네오엠텔’ 때 맛본 벤처의 성장을 잊을 수 없었어요. 직접 회사를 만들어 ‘성장의 맛’을 느끼고 싶다는 충동이 커졌어요. 그리고 프로그램 개발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데, 내가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을 실컷 개발하면서 즐기고 싶었어요.”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 ‘아는 이는 좋아하는 이만 못하고, 좋아하는 이는 즐기는 이만 못하다’는 공자님 말씀이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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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마켓 사무실 모습.

―조직 운영에서 중점 두는 부분이 있나요.

“직원 채용 원칙이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뽑는다’입니다. 사실 절대적 수치로 나보다 뛰어나냐 안 뛰어나냐를 비교하는 건 불가능하죠. 실제로 그렇든 아니든 간에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자’는 얘기입니다. 이미 다수가 집단을 이룬 상태에서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데, 이 사람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해 줘야 양방향 신뢰를 쌓을 수 있다고 봐요. 믿어준다는 느낌을 받으면 기대에 부응합니다. 창업하고 4년 반 됐는데 직원(56명) 중 퇴사자가 딱 3명밖에 없어요.”

―소위 명문대 출신은 아닌데 그게 걸림돌이 된 적은 없나요?

“스타트업계에 학벌 좋은 사람이 참 많아요. 대표들 모임에 갔는데 저 빼고 다 서울대 출신일 때도 있었어요. 갑자기 기숙사 얘기를 하는데 저만 딴 세상에서 온 것 같더군요. 주눅은 들지 않습니다. 일할 때 학벌은 중요하지 않거든요. 직원 채용할 때 학력은 아예 안 봅니다. 서비스를 실제로 개발해 현실화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가산점을 줍니다.”

모바일은 아직 금광

―회사가 늘 성장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요. 디지털 세계도 영원히 마르지 않는 금광은 아닐 텐데요.

“한국에서 컴퓨터 역사는 30년, 인터넷 20년, 모바일 10년이라고 봐요. 자동차가 나온 지 100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시장이 건재합니다. 거기 비하면 디지털 역사는 짧아요. 아직 지역엔 온라인화되지 않은 정보가 많아요.”

―어떤 것들이죠?

“동네 미용실, 빵집, 세탁소 등 지역 생활권에서 만나는 생활 밀착형 서비스 중 온라인화가 안 된 가게가 많아요. 이 소상공인 사장님들이 동네 주민들과 촘촘히 연결될 수 있게 도울 생각입니다. 온라인화가 빨라질수록 생활 반경에서 만나는 사람의 온기가 더 중요해질 겁니다. 그걸 저는 ‘초(超)로컬화’라고 불러요.”

―코로나 시대가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은가요?

“직거래 기본 전제가 대면이라 처음엔 거래가 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웬걸요, ‘문고리 거래’가 등장했어요. 대면하지 않고 현관 손잡이나 문 앞에 거래 물건을 놔두더라고요. 오히려 경제가 어려워지니 아껴 쓰고 나눠 쓰는 경향이 더 강해졌어요. 변화에 맞춰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릴 거라고 봐요.”

인터뷰가 끝난 며칠 뒤 그는 말하는 데엔 영 재주가 없다면서 몇 년 전부터 차곡차곡 모아두고 되새김한다는 글귀들을 카톡으로 보내줬다. 스타트업 대가로 꼽히는 ‘와이컴비네이터’ 창업자 폴 그레이엄의 말이 눈에 띄었다. “인간은 상사가 있게끔 태어나지 않았다(You weren’t meant to have a boss).” 이날 그는 재택근무에 지친 직원들과 난지 캠핑장으로 소풍을 간다며 준비물 인증 사진을 보냈다. 수박 두 통, 배드민턴 채, 족구용 축구공이 바리바리 실린 빨간 캠핑용 카트. 그 안에서 격식, 권위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좋아요 0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제휴안내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