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단 1표의 반대
by 조선일보 임민혁 논설위원입력 2020.05.30 03:18 1949년 9월 중국 정치협상회의가 초대 국가주석을 뽑을 때 모두가 마오쩌둥의 만장일치를 점쳤다. 그런데 576명 중 반대 1표가 나왔다. 당황해하는 선거관리위원들에게 마오가 "반대는 반대일 뿐"이라며 결과 발표를 지시했다. 당시 당 안팎에선 마오 본인이 '겸양'의 의미로 반대표를 던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한참 뒤 이 반대자는 옌징대 교수로 확인됐다. 이 교수는 이후 누명을 쓰고 쫓겨났고 문화대혁명 때 옥사했다.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에서 선거·표결은 대부분 형식적이다. 공산당의 결정을 추인하는 거수기다. 중국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헌법 개정과 주석·총리 선출권을 가진 명목상 최고 권력기관이지만, 서방에서 '고무도장(rubber-stamp)'이라는 비아냥을 듣는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실제로 70여 년 동안 당의 결정을 번복한 적이 한 번도 없고 만장일치에 가까운 표결도 수두룩하다.
▶'고무도장'이 변화 조짐을 보인 적도 있다. 2008년 2946명이 참석한 전인대에서 한 상무위원 임명 동의에 반대표 688장이 쏟아졌다. 부장(장관) 4명도 100장이 넘는 반대표를 받았다. "당내 민주화 진전"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인민일보는 "만장일치는 민의를 납치하는 것"이라는 사설을 싣기도 했다. 하지만 시진핑 시대에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갔다. 2018년 전인대는 반대는 물론 기권표 하나 없이 시진핑을 주석으로 다시 뽑았다. 시진핑 종신 집권을 가능케 하는 수정 헌법안마저 찬성률 99.8%를 기록했다.
▶엊그제 전인대가 홍콩 내 반정부 활동을 감시·처벌하는 내용의 홍콩보안법을 찬성 2878표, 반대 1표로 통과시켰다. 이는 '일국 양제'와 '고도의 자치'라는 약속을 깨뜨리는 행위다. 미국이 이 법안 통과 시 홍콩의 국제 금융·물류 중심지 위상을 없앨 수 있는 제재를 예고해 놓은 상태이기도 하다. 이런 중대한 사안에 반대가 단 1표였다. 홍콩에서 온 대표단이 200여 명인데 이들도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얘기다.
▶15억 인구의 나라가 이렇게 일방통행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은 소름을 돋게 한다. 이미 우리에게도 이 일방통행이 밀어닥치고 있다. 경제·군사력 뒤에 감춰진 일당 독재의 민낯이다. 세계는 이 본질을 잘 알기 때문에 중국을 경계하며 '글로벌 리더'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한국 정부에만 "중국과 운명을 같이하겠다" "중국몽을 꾸고 싶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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