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魚友야담] 청탁이 없으면 쓰지 않는다니

[아무튼,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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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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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웅·주말뉴스부장

장편소설 원고를 막 끝낸 소설가 A와 소주 한잔을 했습니다. 편집자와 약속한 마감 시한을 두 번 어긴 끝에 마침내 성공했다더군요. 함량 초과냐 미달 원고냐 여부는 차치하고, 마감에 성공한 작가의 당일 밤은 두려울 게 없기 마련. 알코올까지 가세한 호기를 꺾을 자는 그 집에 없어 보였습니다.

이날 대화의 안줏거리에는 원고 청탁도 있었습니다. A는 옛날 방식의 작가. 신문 청탁이건, 문예지 청탁이건, 출판사 청탁이건, 청탁이 없으면 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쓸 수 없다'고 했죠.

이 얼마나 오만한 자세입니까. 만인(萬人)이 작가로 바뀐 지 오래인 세상에서, 소설가는 뒷방으로 밀려나고 소위 인플루언서를 떠받드는 세상에서 청탁 없이는 한 줄도 쓸 수 없다니.

SNS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플루언서는 수퍼전파자입니다. 코로나 치하에서 수퍼전파자는 공포의 권력자. 그들이 제공하는 위로와 쾌락은 매력적인 외모, 말초적 문체와 만나 급속도로 전파됩니다. 반면 숙독과 정독이 필요충분조건인 전통적 작가의 문장은 1차 감염도 쉽지 않죠. 그런데 얻다 대고 시방, 청탁이 와야 원고를 쓴다는 방자한 태도입니까.

바뀐 세상에 그는 적응하기 힘든 듯 보였습니다. 그와 내가 동시에 좋아하는 작가로 필립 로스(1933~2018)가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여성 후배로부터도 '미워할 수 없는 꼰대'라는 애정 어린 헌사를 들은 작가죠. 죽기 얼마 전, 로스는 자신이 평생 쓴 31권의 책을 모두 다시 읽은 뒤 절필 선언을 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매일매일의 절망과 굴욕을 의미한다. 견뎌낼 힘이 더 이상 없다. 나는 지금까지 소설이 죽고 있다고 말해왔지만 이제는 독서력이 죽고 있다고 정정해야겠다."

순간적인 위로나 찰나의 감동만으로 세상을 지탱할 수 있다면 우리 삶도 쉽겠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낱낱을 놓치지 않는 정독과 숙독을 통해서도 쉽게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취한 A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청탁을 받아야만 쓰는 이유가 사실은 따로 있다고. 제대로 된 소설 쓰기는 힘든 일이라고. 힘든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 사람은 없다고. 그래도 힘든 것과 재미있는 것 중에서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그래도 힘든 걸 고르겠다고. 5월의 마지막 주말, 무탈하시기를.  좋아요 0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제휴안내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