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가 뭐길래?…의약계·정부·ICT·환자 네가지 시선에 갇힌 논쟁

http://news.kbs.co.kr/data/news/2020/05/29/4458114_Y80.jpg

코로나19로 '비대면 산업'에 대한 수요가 많아졌습니다. 그만큼 성장 전망도 긍정적이어서 정부는 '한국판 뉴딜'에 비대면 산업을 주요하게 포함시켰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뜨거운 감자가 '원격의료'인데요. 해묵은 '20년 논쟁'이 재점화됐습니다.

■"중국보다 23년 뒤져있는 상황 안타깝다" ICT업계 20년째 볼멘소리

KBS 취재진이 만난 전진옥 비트컴퓨터 대표의 말입니다. 20년 가까이 원격의료시스템 사업에 뛰어들어, 몽골과 중남미, 동남아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원격의료가 시범 사업에 머물러있음을 아쉬워합니다. 그의 회사는 현재 격오지 군부대, 원양선박, 교정시설 등에 한해 '화상통신 진료 장비'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http://news.kbs.co.kr/data/fckeditor/new/image/200529rk1_1.jpg
비트컴퓨터 직원들이 의료용 스코프(scope)를 이용한 화상통신 진료 장비를 시연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이 극심했던 대구 지역 요양원 100곳에 원격모니터링 시스템을 무상으로 제공했던 인성정보의 김홍진 이사도 규제로 인해 국내 의료산업이 다른 나라들보다 뒤처지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는 "지금 우리나라는 중국보다도 2~3년 뒤져있는 상황이다"면서도 "기술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관계자들과 함께 가야만 하기 때문에, 어렵더라도 지속적으로 협의와 이해를 구하려고 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들 ICT업계에서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원격진료 혹은 비대면진료에 대한 효용과 가치가 주목받을 것이라며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도 보였습니다.

전 대표는 "이번 코로나19를 계기로 원격 기술들의 필요성이 부분적으로 검증돼있는 만큼,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서만 하는 서비스들을 국내에 더 보급하고 이용자들이 활용한다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이들 업체가 우리나라에서 원격의료 사업에 뛰어들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되어있는 강원도에서 시범 사업을 하거나, 산업통상자원부의 규제 샌드박스에 지정되는 겁니다.

코로나19 상황과 맞물려 청와대 등 정부가 '비대면 산업 육성'에 의지를 보이자, ICT 업계에서도 준비태세를 하는 모양새인데요. 막상 현실화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http://news.kbs.co.kr/data/fckeditor/new/image/200529rk1_2.jpg
인성정보가 해외에서 서비스하는 원격 건강관리 장비 (출처 : 인성정보 유튜브 채널 )

■가랑비에 속옷 젖을까…정부, '스펙 쌓기'부터 차근차근 접근

지난 14일 오후 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IT의료기기 회사 인피니트헬스케어를 방문했습니다. '한국판 뉴딜' 정책 확정안 발표를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에 산업계와 의료계에서는 정부의 비대면 산업 육성에 원격의료가 주요하게 들어갈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특히 같은 날 성윤모 장관도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원격의료 제도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날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도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공식 브리핑에서 원격의료 제도화에 대한 검토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성 장관의 발언은 규제 샌드박스 맥락에서 나왔기 때문에, 당장 일부 업체들이 규제 샌드박스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게 됐습니다. 정부의 의지에 맞춰 사업 진출의 기회를 잡기에 유리해졌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KBS 취재진은 원격의료 사업과 관련해 산업부의 규제 샌드박스 심사를 받고 있는 업체를 두어 곳 파악했습니다. "보통의 심사 때와는 분위기가 다른 것 같다"는 모 업계 관계자의 말도 있었는데요. 단, 정식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신중모드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정부 관계자도 "심사 경과와 결과는 철저히 기밀이다. 아직 결정된 곳은 없다"는 답변만 내놓았습니다. 산업부는 "규제 샌드박스 심사는 심사대로 하되, 원격의료 의제는 보건복지부가 중심인 사안"이란 입장입니다.

http://news.kbs.co.kr/data/fckeditor/new/image/200529rk1_3.jpg
정부는 코로나19로 비대면 의료 서비스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비대면 의료 허용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KBS뉴스9 20.5.14 보도 화면)

정부 “비대면 의료 허용 적극 검토”…민주당은 속도 조절

이와는 별도로, 우리나라에서 원격의료를 시범 사업할 수 있는 곳이 강원도입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강원도는 동네의원급 병원 8곳과 함께 지난 27일부터 환자의 심전도·혈압·혈당· 등을 원격 모니터링하는 사업을 시작했는데요. 실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병원은 없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행정 실무 관계자는 "의지가 없는 병원은 어쩔 수 없지만, 내년 안에 환자 200명을 목표로 진행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시범 사업 최종적 목표는 '진단과 처방'"이라고 밝혔습니다. 단, "원격의료가 안정적이다, 실질적으로 대면진료와 차이가 없다는 경험 값이 나와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즉, 이번 시범 사업을 통해 데이터와 경험을 축적해 원격의료의 토대를 만들겠다는 건데요. 취재진에게 거듭 '단계에 대한 판단은 의사가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강원도 원격의료 “시작부터 삐걱”

당초 청와대는 원격의료와 관련해 강력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김연명 사회수석은 기자들에게 "코로나19 때 감염병 예방법에 따라 한시적으로 허용한 전화 상담 진료 17만 건을 자세히 분석해 장단점을 따져보겠다"고 밝혔습니다. 코로나19 전화상담으로 처방받은 건수는 26만 건이 넘는데, 절반 이상이 병·의원급에서 이뤄졌고 별다른 오진 사례도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3주년 연설에서 "비대면 의료서비스와 온라인 교육, 온라인 거래, 방역과 바이오산업 등 포스트 코로나 산업 분야에서 강점이 있습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의약계 '보건·의료가 먼저다'…'환자 목소리 반영된' 사회적 합의 도출 시급

"비대면 의료, 영리화나 산업화 목적 없다"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이 27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21대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숍에서 한 말입니다. 표현도 '원격의료'가 아닌 '비대면 진료'라고 명확히 말한 것은 '한 발 뺀' 모양새로도 비칩니다.

http://news.kbs.co.kr/data/fckeditor/new/image/200529rk1-4.jpg
지난 27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 시민단체의 원격의료 반대 기자회견

"원격의료 추진 중단하라"

같은 날 아침,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는 시민단체 '참여연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가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들은 "코로나19 사태 속 감염 대응을 위한 비대면 의료가 사실상 원격의료를 추진하려는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시민단체와 의약계는 오랫동안 원격의료 사업에 민감히 반응하고 반발해왔습니다. 원격의료가 자칫 의료 민영화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원격의료를 하게 되면 수혜자는 환자가 아닌 대형병원이나 ICT기업이 될 것이라는 겁니다.

대한의사협회 등은 원격의료가 현실화될 경우, 환자들이 대형병원으로 몰려 동네의원들 사정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특히 오진 등의 위험성 때문에 비대면 진료는 지양해야 한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정부가 코로나19 전화 상담 등 비대면 진료의 장점을 내세우자, 의협은 지난 18일 정부가 코로나 19를 빌미로 원격진료 제도화를 추진한다며 "파렴치한 배신행위"라는 표현까지 쓰며 공개적으로 의사들에게 '전화상담 처방 전면 중단'을 권고했습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회의론도 있습니다. 원격의료가 분명 기술 진보에 따라 중요한 사안인 것은 맞지만, 정치권이나 보건당국이 그만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겁니다. 20년 동안 별다른 진전 없이 공회전한 설익은 논의가 코로나19라는 분위기만 탄 것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이런 가운데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KBS 취재진에게 "중증환자들은 원격의료 수요가 높다"면서도 "비대면·원격 의료에서도 개선점은 분명히 있지만, 논의의 중심에 늘 환자는 빠져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환자와 환자 가족들의 목소리가 소외되어있는 의료 혁신에 대한 논의, 과연 어떤 실효성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