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국회 ‘협치’ 첫 발은 내디뎠지만…산 넘어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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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대통령-여야 원내대표 1년 6개월 만에 회동...156분간 협치 논의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김태년·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어제(28일) 청와대 오찬 회동을 통해 정부와 국회 간 '협치'를 향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1년 6개월 만에 이뤄진 문 대통령과 두 원내대표의 만남은 예정보다 길어진 156분 동안 진행됐습니다.

협상과 대화를 표방한 여야 원내 수장들과 취임 당시 국민통합을 다짐했던 문 대통령의 회동이었기에 기대감이 컸습니다.

우선 코로나 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선 모처럼 정부와 국회가 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문 대통령이 확장재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국회의 3차 추경 협조를 당부하자,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가 "야당을 진정한 국정의 동반자로 생각한다면 저희도 적극 돕겠다"고 호응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국정 현안들에 대해선 뚜렷한 합의가 도출되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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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위안부 합의 무력화" vs "피해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한 것"

애초 이번 회동에서는 민주당 윤미향 당선인 논란 등 정치 이슈보다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경제대책에 대화가 집중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하지만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면서 자연스럽게 윤 당선인 논란이 우회적으로 거론됐습니다.

주 원내대표는 "정부가 지난 정권의 위안부 합의를 무력화하면서 위헌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보상과 관련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윤미향 사태'가 불거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피해자들이 (합의를) 받아들이지 못해 문제 해결이 되지 않은 것"이라며, 한일 위안부 합의와 이행의 문제는 "앞으로의 과제"라고 답변했습니다.

관심을 모았던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 문제는 직접적으로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주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도 국민통합을 말했고, 대통령의 '통'자도 통합을 의미한다. 국민통합에 나서 달라"며 "공정과 법치주의가 요체다. 적폐청산에 있어 상대방에 가혹하게 하고 내 편에 관대하게 해 우려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과거 민주화 대 독재의 대결 구도는 끝난 지 오래"라며 "적대감이나 '상대가 타도 대상'이라는 생각을 벗어나 이제 한 페이지씩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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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통령 "공수처 차질없는 7월 출범"…주호영 "특별감찰관 있어야"

공수처와 개혁법안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습니다.

문 대통령은 "공수처는 7월 출범해야 한다"며 "국회를 열어 공수처법의 시행을 위한 공수처장 인사청문회법과 국회법 등 후속 입법의 조속한 처리를 요청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주 원내대표는 "많은 국민과 우리 당은 검찰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수처를 설치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 패스트트랙 과정에서도 절차상 위법이 있었다"며 "지금 와서 처리를 요청하는 것 자체가 졸속"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주 원내대표는 또 "야당이 추천하는 공수처장 추천위원 2명은 비토권(거부권)을 준 것이기 때문에 이 두 명이 반대한다면 공수처장을 마음대로 임명할 수 없다고 했고, 이에 문 대통령과 김 원내대표도 동의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특별감찰관의 필요성을 언급했는데, 문 대통령은 "공수처와 특별감찰관 기능이 중복될 우려가 있다"며 "두 기능을 동시에 두면서 특별감찰관을 임명할지는 양당이 협의해 달라"고 공을 국회로 돌렸습니다.

문 대통령은 특히 "특별감찰관제도는 공수처가 합의되지 않아서 만든 것"이라며 "공수처의 원래 뜻은 대통령 측근의 권력형 비리를 막자는 취지"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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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용보험 확대·일자리 등 전방위 토론

고용보험 확대와 일자리 문제에 대해서도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문 대통령은 우선 예술인까지 고용보험을 확대하는 법안에 대해 "예술인만 통과된 것이 아쉽다. 진짜 어려운 것은 자영업자인데, 소득 파악이 선행돼야 한다"면서 "시행 기간을 1년 뒤로 늦췄는데, 6개월로 당겨달라"고 촉구했습니다.

이에 주 원내대표는 "정부 부처가 준비하는 데 1년이 걸린다고 해서 했던 것이지, 우리가 일부러 늦춘 게 아니다"라며 "언론에 마치 우리가 늦추는 것처럼 나와 불편하다"고 말했습니다.

일자리와 관련해선 주 원내대표가 "고용 유연성이 유지돼야만 리쇼어링(자국 기업의 국내 복귀)이 가능하고 리쇼어링이 되게 되면 국내 일자리도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점에 대해 정부가 각별한 관심을 가져달라 했고 대통령도 그 점에 대해 동의했다"고 회동 후 브리핑에서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윤도한 국민소통소석은 오늘 "문 대통령은 주 원내대표의 얘기를 들은 것일 뿐 동의한 것이 아니다"라고 부인하면서 "다만 주 원내대표가 얘기할 때 문 대통령이 '안 된다'고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주 원내대표로서는 오해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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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치의 제도화'..."자주 만나자"
문재인 대통령은 "협치의 쉬운 길은 대통령과 여야가 격식 없이 자주 만나는 것"이라며 "앞으로 현안이 있든 없든 정기적으로 만나서 정국 현안을 얘기하자"고 두 원내대표에게 제안했습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일정이나 방식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서로 간 대화를 위한 신뢰를 확인했다"며 "'협치의 제도화'를 위한 기틀을 다졌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어제 회동을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가 진정성 있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눈 '눈맞춤의 시간' 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오늘 막을 내리는 20대 국회 역시 첫 출범 당시 국민에게 한 약속이 '협치'였습니다. 하지만 공수처법과 선거법 개정 등을 둘러싼 여야 간 극한 대립으로 역대 최악의 국회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죠.

내일부터 공식 임기가 시작되는 21대 국회와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협치의 길'은 어떻게 그려질지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