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일 만에 땅에서 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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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씨 고공농성 마무리
삼성과 보상 방안 합의한 듯
이재용 대국민 사과 후 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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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29일 서울 강남역 철탑에서 고공농성을 마치며 사다리차를 타고 내려오고 있다. 권도현 기자

툭.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61)가 잘라낸 밧줄이 25m 철탑 위에서 지상으로 떨어졌다. 그의 생명을 지탱해 준, 연대의 손길이 오갔던 도르래의 밧줄을 김씨는 직접 끊어냈다. 355일간의 고공농성을 제 손으로 마무리지은 순간이었다.

서울 강남역 사거리 폐쇄회로(CC)TV 철탑에서 355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김씨가 29일 지상으로 내려왔다. 이날 오후 7시쯤 김씨는 사다리차를 타고 내려와 땅을 밟았다.

구급대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첫발을 내디딘 그는 살이 많이 빠졌지만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다. 마이크를 잡은 김씨는 “철탑 위가 위생적으로는 가장 안전합니다. 나 코로나19 환자 아닙니다”라고 농담을 건네며 지상 위 첫 발언을 시작했다.

김씨는 “철탑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며 “ ‘나 하나 떨어져 죽으면 우리 가족들 보상비 정도는 주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죽을) 날짜를 선택했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강남역을 찾고 연대해오는 분들의 눈에 눈물나게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버텨왔다”고 말했다. 연대해 준 이들에 대한 감사함을 드러내며 울음을 삼키기도 했다.

이에 앞서 김씨의 고공투쟁 종료를 기념하며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김씨가 삼성 측과 작성한 최종 합의문 일부가 공개됐다. 합의문에서 삼성은 “장기간 고공농성을 조속히 해결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김용희님은 해고 이후 노동운동 과정에서 회사와 갈등을 겪었고 그 고통과 아픔이 치유되지 못했다. 회사가 그 아픔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던 점으로 인해 그 가족분들이 겪은 아픔에 진심으로 위로를 보낸다. 조속히 건강을 회복하시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김씨가 만 60세 정년을 지난해 7월 이미 넘긴 만큼 어떤 형식으로 복직이 이뤄질지에 대해 관심이 쏠렸지만, 이날 구체적인 보상안과 복직 방안 등 합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삼성해고자고공농성공대위는 명예회복을 위한 사과 등 관련 내용에 대한 전반적 합의를 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대해 온 분들을 눈물나게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버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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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두 다리 쭉 뻗고 자고 싶어요”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29일 서울 강남역 철탑에서 355일간의 고공농성을 마치고 내려오며 꽃다발을 받고 있다. 권도현 기자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 고공농성 마무리

1995년 해고 뒤 25년 투쟁…지난해 6월 삼성전자 사옥 앞 철탑 올라
“자신과의 싸움 가장 힘들어”…시민단체 회원들, 물심양면으로 지원
삼성 측 “문제 조속히 해결 못해 사과”…구체적 보상안은 공개 안 돼

임미리 공대위 공동대표는 “이상의 발표만을 공개하기로 합의해 더 이상은 말씀 못 드리는 점을 양해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공대위에 따르면 공대위와 삼성 측은 전날 오후 6시쯤 서울 모처에서 만나 합의에 성공했다. 김씨는 그간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노동자들에게 직접 사과할 것’ ‘해고노동자들을 명예 복직시킬 것’ ‘해고 기간 동안의 임금을 지급할 것’ 등을 요구해왔다.

김씨의 고공농성은 355일간 이어졌지만 그의 싸움은 30여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김씨는 1982년 12월 삼성항공(현 한화테크원) 창원1공장에 입사했다. 경남지역 삼성 노조 설립위원장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1995년 5월 해고됐다. 김씨는 투쟁을 이어오다 2017년부터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지난해 6월3일 단식투쟁에 들어갔고, 1주일 뒤인 지난달 10일 그는 서초사옥이 보이는 철탑 위에 올랐다.

지상 25m, 1.6㎡(0.5평)의 공간에서 354번의 밤을 보내는 동안 그는 약해졌다가도 다시 힘을 내기를 반복했다. 지난해 7월27일까지 55일 동안 단식투쟁을 하느라 몸무게가 30㎏이 빠지는 등 극한의 상황에 다다랐다. 장마와 무더위, 한파, 매연을 철탑 위에서 새우잠을 자며 견뎠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날 가장 하고 싶은 일로 “두 다리 쭉 뻗고 자는 것”을 꼽았다.

해고되지 않고 일했더라면 맞았을 정년퇴직일(2019년 7월10일)도, 생일도, 명절도 하늘에서 보냈다. 그의 노조활동 시절 아버지는 삼성의 감시에 시달리다 실종됐고 어머니도 쓰러진 뒤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숨졌다고 한다. 지난해 9월 경향신문과 전화 인터뷰를 하며 그는 “명절이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저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생각에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씨를 버티게 한 것은 연대의 힘이다. 시민단체들은 철탑 아래 농성 천막에서 숙식하며 매일 김씨에게 보조배터리와 물, 핫팩 등을 줄로 묶어 올려보냈다. 하루 두 끼 식사도 잊지 않았다. 김씨는 1년 만에 땅을 밟은 이날도 연대해 온 이들의 풀지 못한 숙제를 언급했다. 그는 “삼성생명 암 보험 피해자들, 과천 철거민 등의 문제가 선제적으로 해결됐으면 하고 기도했다”며 “삼성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코로나19로) 나라 경제가 반토막이 나도 사람이 우선”이라며 “현 정권이 노동자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사회보장제도의 초석을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993년 김씨의 해고무효 확인소송 항소심 변호인이었다.

또 지상으로 내려오기 전 철탑 위 마지막 발언에서 김씨는 “자랑스러운 노동 역사 속에 자리매김 할 수 있는 큰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주신 동지 여러분, 눈물나게 고맙다”며 “이번 투쟁을 통해 삼성에 새로운 노사문화가 자리잡았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노와 사는 상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6일 “노조 문제로 상처 입은 모든 분들에게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삼성은 29일 ‘농성 해결에 대한 삼성의 입장’을 통해 “김씨의 건강이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바란다. 앞으로 보다 겸허한 자세로 사회와 소통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지형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은 “합의 성사를 위해 애쓰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지상으로 내려온 김씨는 바로 병원으로 옮겨질 예정이었으나 발열 체크 결과 38.2도로 코로나19 방역 방침상 즉시 이송되지 않았다. 하성애 공대위 공동대표는 “다행히 (김씨의) 열이 금방 내려 함께 식사를 했다”며 김씨가 곧 서울의 한 병원으로 이송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