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익어가는 귤처럼…16세 네 친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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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의 맛
조남주 지음
문학동네 | 208쪽 | 1만1500원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소란’은 단짝 친구 셋과 함께한 제주도 여행에서 감귤 체험장을 찾는다. 귤밭에 들어서자마자 먹느라 바쁜 ‘은지’, 열심히 귤을 따며 먹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는 ‘해인’, 큰 귤은 바구니에 넣고 작고 못생긴 귤만 까먹는 ‘다윤’. 각자 성격대로 귤을 따면서 친구 은지가 해준 말이 소란의 머리에 맴돈다. 막 따 먹은 귤이 더 맛있는 건 나무에 매달린 채 끝까지 영양분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초록빛일 때 미리 수확해 유통과정에서 익은 귤과 다르다.

소란은 생각한다. “초록색일 때 수확해 혼자 익은 귤, 그리고 나무와 햇볕에서 끝까지 영양분을 받은 귤. (…) 나는, 그리고 너희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82년생 김지영>의 작가 조남주가 청소년 소설로 돌아왔다. <귤의 맛>은 “태어나 가장 외롭고 가장 힘들고 알 수 없게 두려웠던” 열여섯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4명이 주인공이다. 친구 넷은 여행에서 다소 충동적으로 한 가지 약속을 하고 이를 적어 타임캡슐에 묻는다.

소설은 이 약속을 둘러싼 각자의 속사정과 계산법, 주변 상황과 흔들리는 감정을 번갈아 풀어놓는다. 이들은 수시로 어긋나고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타인과의 관계 때문에, “잘못하지 않아도 불행해질 수 있다”는 어쩌면 자명한 사실 때문에 막막함을 느끼고 흔들린다. 10대의 평범한 나날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자잘한 생채기와 외로움의 감정을 섬세하고 따뜻하게 포착했다.

조남주 작가는 소설을 구상하면서 청소년들을 인터뷰하고 청소년이 만든 신문을 찾아 읽는 등 취재했다고 한다. 그는 ‘작가의 말’에 “성장은 때때로 버겁고 외로운 일인 것 같다”며 “이 책이 낯설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인사와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