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미치도록 나쁨’을 감지한 저탄소의 미래

by
http://img.khan.co.kr/news/2020/05/29/l_2020053001003337500277171.jpg

에어 쇼크
팀 스메들리 지음·남명성 옮김
예문아카이브 | 408쪽 | 1만8000원

2008년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은 건물 옥상에 대기오염 감지장치를 설치했다. 불편해진 중국 당국이 여러 차례 중단을 요구했지만 미대사관 측은 계속 수치를 발표했다. “중국, 그중에서도 허베이성 북쪽 하늘이 잿빛으로 변해가던” 시기였다. 감지장치는 PM2.5 이하의 농도가 200㎍을 넘어가면 ‘매우 유해’ 경고를 스마트폰 앱과 트위터로 내보냈다. 400 이상이면 ‘위험’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아무리 대기질이 나빠져도 500 이상은 나오지 않으리라고 여겼다. 그래서 대사관 측은 500 이상을 ‘미치도록 나쁨’이라고 프로그램했다. 그것은 일종의 농담이었다.

PM10 이하는 미세먼지, PM2.5 이하는 초미세먼지다. 한데 2010년 11월8일, 설마 했던 상황이 닥치고야 말았다. 초미세먼지 측정치가 503㎍까지 치솟으면서 오후 8시 ‘미치도록 나쁨’이 자동 발신됐다. 미대사관과 중국 당국 모두에게 곤란한 상황이었다. 경고 문구는 재빨리 ‘측정 불가’로 변경됐지만 ‘미치도록 나쁨’은 들불처럼 번져갔다. 중국의 소셜미디어를 통해서였다. 책은 이 상황에 대해 “중국 시민들이 (드디어 대기오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다가 급기야 3년 뒤에는 초미세먼지 농도가 800㎍을 넘어서면서 ‘에어포칼립스’가 발생했다. 공기(Air)와 대재앙(Apocalypse)의 합성어가 현실화하자, 베이징시 환경보호국도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들은 700㎍이 조금 넘는 것으로 공식 발표했다.

저자는 영국의 환경전문기자다. 파이낸셜타임스, 가디언, 선데이타임스 등에 기고해왔다. 기자 글답게 각종 수치와 통계, 객관적 사실이 풍부하다. 저자는 2015년 폴크스바겐의 디젤 배기가스 사건이 터졌을 때, 자신의 어머니가 그 회사 차를 사면서 “저탄소 인증을 받은 차란다”라고 자랑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는 폴크스바겐의 한 엔지니어가 “아, 좀 속이면 어때?”라는 사악한 아이디어를 내놓기 한참 전부터 디젤의 재앙이 이미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도쿄 의정서’가 각국 정부에 “1997년부터 2013년 사이에 CO2 배출량을 8% 줄이도록 요구”한 것을 “신중하지 못한 정책”의 출발로 바라본다.

http://img.khan.co.kr/news/2020/05/29/l_2020053001003337500277172.jpg
2015년 4월15일 먼지폭풍이 덮친 중국 베이징 시내에서 한 커플이 마스크를 쓴 채 키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알려져 있다시피 디젤 자동차는 대기오염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도쿄 의정서의 요구는 “지구온난화를 생각하면 필요한 조치”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디젤 차량의 급속한 증가를 가져와 대기오염의 가속페달을 밟았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디젤이 휘발유보다 CO2 배출량이 15%가량 적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측면이 한껏 부각되면서 대부분의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디젤 차량 소비자들에게 세금을 줄여주는 정책을 도입했다. 저자의 고국 영국에서는 CO2 배출량에 따라 자동차세를 매겼다. 당연히 디젤차가 비용 우위를 점하면서 “디젤을 향한 질주”가 시작됐고 도로는 “디젤에 점령”당했다. 유럽 전체에서 디젤 차량 점유율은 1995년 10% 이하에서 2012년 50% 이상으로 높아졌다. 각국의 정책 입안자들이 완전히 간과한 것은 “도로 위에서 달리는 대부분의 디젤 자동차는 휘발유 차량보다 킬로미터당 NO2를 4배, PM(미세입자)을 22배 더 배출한다”는 사실이었다.

“자동차와 산업 공정에서 발생하는 보이지 않는 살인자”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저자는 대기오염의 원인과 실체, 위험한 화학물질의 종류, 그 화학물질의 발생지와 발생량 등을 낱낱이 살핀다. 심각한 대기오염은 앞서 언급한 베이징과 런던뿐 아니라 인도의 델리, 미국의 LA 등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제 세계는 이전 어떤 시대보다 긴밀히 연관돼 있을 뿐 아니라 “흘러가고 뒤섞이면서 오염되는 공기의 속성상” 아프리카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 “2012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한 해 모든 사망자의 7.4%는 미세먼지에 만성 노출된 것이 원인”이었다.

책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매일 1만8000명이 대기오염으로 죽는다. 연간 사망자는 650만명이다. 이 수치는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많으며 그 수가 갈수록 늘고 있다”. 저자는 이처럼 심각한 수준의 경고를 보내면서,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책 후반부에서 살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도시의 대기오염은 그 원천을 차단할 수 있으며, 오염을 막으면 그 대가는 즉각적이고 극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저자는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강조하면서 “도심에서 모든 휘발유와 디젤 차량의 운행을 금지할 것” “디젤 버스를 모두 전기 버스로 전환할 것” “도보와 자전거 기반 시설에 투자할 것” “최악의 대기오염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찾아낼 것. 모든 투자를 그들을 위해 먼저 사용할 것” 등 매우 세부적인 권고를 내놓는다.

물론 저자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 정치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다. “배기가스 없는 저탄소 미래가 10년이나 20년 뒤에 찾아올지 아니면 100년 뒤에 찾아올 것인지는 대중의 압력과 정치적 의지에 달렸다”고 말한다. 책에는 ‘생존을 위협하는 대기오염을 멈추기 위해 바꿔야 할 것들’이라는 부제가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