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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서울 강남역 네거리 교통관제탑에서 355일 만에 고공농성을 끝낸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크레인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사설] 1년 만에 땅 디딘 노동자, 마지막 고공농성자 되길

29일, 서울 강남역 네거리 교통관제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던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땅으로 내려왔다. 지난해 6월10일 탑에 오른 지 355일 만이다. 김씨가 버텨온 탑 위는 역대 어느 고공농성장보다 비좁았다. 단식도 세차례나 했다.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헤아리기 어렵다. 무엇보다 그의 안전과 건강이 큰 걱정이었는데, 이제라도 삼성과 합의를 이뤘으니 다행이다.

김씨는 삼성에서 해고된 뒤 25년 동안 복직 싸움을 해왔다. 노조 문제로 납치와 감금, 폭행, 협박 등 삼성 쪽으로부터 갖은 시달림을 당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가 탈 없이 직장생활을 했더라도 올해 예순한살이니 이미 정년이 지난 나이다. 그러나 김씨 개인과 삼성 간의 세세한 합의 내용을 떠나, 삼성이 창사 이래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면서 숱한 피해를 양산한 데 대한 실질적인 보상이라는 점에서 사회적인 의미가 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로, 삼성과 김씨의 협상 타결 여부는 이 부회장 사과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가늠자였다. 그러나 협상 과정은 지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은 29일 짧은 입장문을 내어, “그동안 인도적 차원에서 대화를 지속했다”고 밝혔다. 굳이 ‘인도적 차원’이라고 못박음으로써, 이 사안을 노동기본권이 아닌 도의의 문제로 돌리려는 의도가 아니기를 바란다. 김용희씨의 고공농성을 협상으로 해결한 만큼, 삼성은 이제 다른 해고노동자들에 대해서도 그 피해에 상응하는 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고공농성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 된 지 오래다. 2010~2011년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309일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 이후에도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고공농성이 끝없이 이어졌고, 농성 기간도 갈수록 길어졌다. 지난해 초에는 파인텍의 홍기탁·박준호씨가 426일이라는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 끝에 겨우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노동 문제가 노사 간의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으로 풀리지 않는 것은 노동권과 노조에 대한 기업들의 시대착오적인 인식 탓이 크다. 그 맨 앞에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기업 삼성이 서 있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기업들의 낙후한 노동 인식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업도 삼성이다. 부디 김용희씨가 마지막 고공농성자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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