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법 밀어붙인 시진핑, 그 '희망'은 실현될까?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보안법 초안 통과됐지만... 홍콩 '기본법' 침해하긴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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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자료사진) ⓒ 연합뉴스

지난 2019년 홍콩 송환법 사태로 홍역을 치른 중국이 이번에는 '보안법' 카드를 통과시켰다.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됐다가 두 달 만인 지난 21일 개막된 양회(兩會)에서 이른바 '홍콩 보안법'이라는 새로운 칼을 꺼내들었고, 28일 초안이 통과됐다.

양회 중 하나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는 국가적 의사결정에 앞서 주요 정치세력들의 의견을 수렴한다. 이 정협과 짝을 이뤄 국가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개막 이틀 뒤인 지난 23일 홍콩판 국안법(港版國安法)으로 불리는 홍콩 보안법 초안을 공개했었다. 홍콩보안법 통과 후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9일 홍콩 보안법 법제화를 위한 후속 절차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보도했다.

정식 명칭이 '홍콩특별행정구 국가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법률제도 및 집행 체계의 수립 및 정비에 관한 전국인민대표대회 결정 초안(全國人民代表大會關於建立健全香港特別行政區維護國家安全的法律制度和執行機制的決定 草案)'인 홍콩 보안법 초안은 24일 치 <홍콩경제일보> 기사 '4대 행위 견제, 홍콩 보안법 초안 전문(針對4種行為 港版國安法草案全文)'에 따르면, 홍콩보다는 중국의 관점에 입각해 있다.

보안법은 제정 취지를 밝히는 대목에서 "국가주권·안전·발전이익을 지키고 일국양제(一國兩制) 제도 및 체제를 견지하고 완성하며(A), 홍콩의 장기적 번영과 안정을 유지하고 홍콩 주민의 합법적 권익을 보장하고자(B)" 한다는 목적을 선언했다. 중국 중앙정부의 이익(A)이 앞에, 홍콩 주민들의 이익(B)이 뒤에 배치됐다. 보안법 제정의 1차적 목적이 무엇인지를 드러낸 것이다.

지난해 송환법 사태가 홍콩에 대한 중국의 주권적 권리, 중국의 안보 및 경제적 이익을 위협했으며, 중국과 홍콩을 묶는 일국양제 시스템에도 해를 끼쳤다는 중국 지도부의 위기의식이 보안법 제정 취지에서 드러난다. 그런 위기의식이 보안법 제정 추진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왜 다시 '보안법' 들고 나왔나

중국은 2003년에도 초대 홍콩행정장관인 둥젠화(퉁치화)를 내세워 보안법 제정을 시도했다. 둥젠화는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홍콩 헌법)' 제23조의 "홍콩특별행정구는 자체적으로 법을 제정하며, 국가를 배반하고 국가를 분열시키며 반동을 선동하고 중앙인민정부를 전복하며 국가기밀을 절취하는 행위를 금지하여야 하며, 외국의 정치조직 또는 단체가 홍콩특별행정구에서 정치활동을 진행하는 것을 금지하고, 홍콩특별행정구의 정치조직 또는 단체가 외국의 정치조직 또는 단체와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금지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근거로 보안법 제정에 착수했다.

하지만, 그해 7월 1일 50만 홍콩인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보안법 반대투쟁을 벌임에 따라 둥젠화의 뜻은 꺾이고 말았다. 중국 정부의 압력이 강렬했는데도, 홍콩 당국은 9월 5일 보안법 제정을 철회했다.

2019년에 중국은 홍콩인들의 격렬한 저항과 미국 진영의 강경한 태도를 경험했다. 이런 상태에서 17년 전에 이루지 못한 보안법 문제를 다시 들고 나왔다. 코로나19 사태 와중인데도 이 문제를 끄집어낸 것을 보면, 중국 지도부의 각오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지도부가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다는 점은 우산혁명이 있었던 2014년에도 드러났다. 홍콩 자치권을 존중하던 종래의 입장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점이 이 해에 어느 정도 드러났다. 당장의 갈등을 불사하고서라도 직접 지배를 관철시키겠다는 희망 내지는 의지가 표출됐던 것이다. <현대중국연구> 제18집 제1호에 실린 이희옥·김지현의 공동논문 '중국과 홍콩 관계의 성격 변화: 후견주의, 조합주의, 직접지배로의 발전'에 이런 대목이 있다.
 
"2014년 6월 중국은 반환 이후 홍콩 정책에 대한 첫 공식 문건인 <백서>를 발간하며 '일국양제' 실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백서>는 홍콩에 대한 중국의 관할권과 홍콩의 자치권도 중국 정부가 그 범위를 규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홍콩의 정치개혁 요구는 일국양제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 있다고 인식하고, '양제'보다 '일국'을 강조함으로써 홍콩이 누릴 수 있는 자치의 범위를 크게 제한했다. 이처럼 중국이 일국양제를 재해석하며 홍콩에 대한 중국의 우월적 지위를 확인한 것은, 반환 시 영국과 체결했던 공동성명(Sino-British Joint Declaration)의 합의 사항을 사실상 번복한 것이었다."

이처럼 중국이 2014년에 공식 문서를 통해 직접 지배의 의향을 살짝이나마 표출했기 때문에, 홍콩인들 입장에서는 중국이 무엇을 하건 간에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중국이 홍콩 자치권을 서서히 약화시키다가, 자치권 만료 기한인 2047년 이전에라도 홍콩을 일반 행정구역으로 만들어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만도 하다.

그런 상태에서 이번에 보안법 문제를 다시 들고 나오니, 홍콩뿐 아니라 미국 진영 국가들도 눈이 번쩍 뜨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중국이 일국양제를 폐기하고 중국과 홍콩을 일국으로 만들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질 만도 한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 시각으로 29일 밤이나 30일 새벽께 중국 관련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중국의 직접지배 꿈? 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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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번화가에서 독립요구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홍콩인. 2009년 2월 촬영. ⓒ 김종성

 
그러나 중국이 직접 지배를 관철시키는 것은 현재로서는 첩첩산중이다. 무엇보다 홍콩인들의 저항이 너무나도 격렬하다. 저항이 좀 더 거칠어질 경우에는 인민해방군을 통한 무력적 해결을 검토할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인민해방군이 홍콩에서 목적을 이루려 할 경우, 티베트나 신장위구르에서 또 다른 변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렇게 되면, 홍콩을 지키는 것보다 베이징을 지키는 것이 시급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중국 입장에서는 티베트·신장위구르에 불길이 번지기 전에 홍콩 사태를 최대한 신속히 해결할 수 있겠는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직접 지배를 위한 무력동원 카드를 성급하게 꺼낼 수 없는 이유다.

이런 우려를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안 그래도 남중국해(난지나해)에서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는 미국이 홍콩과 중국의 분열을 촉진하려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이므로 인민해방군이 홍콩 문제를 단시간에 처리하리라고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중국 정부가 조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이번 보안법 문제에서도 드러난다. 미국의 관점을 따르는 언론들은 중국이 보안법을 통해 당장에라도 홍콩을 삼키고 일국양제를 무력화시킬 듯이 보도하고 있지만, 법안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말하기 힘들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보안법 서문에서는 홍콩보다 중국의 이익이 우선시됐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중국이 조심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홍콩과 관련된 국가안보를 어떻게 관철시킬 것인가를 규정하는 제3조에서 그 점이 나타난다.

"국가주권, 통일과 영토 수호를 유지하는 것은 홍콩특별행정구의 헌법적 책임이다. 홍콩특별행정구는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이 규정한 국가안전 수호에 관한 입법을 가능한 한 빨리 완수해야 한다. 홍콩특별행정구의 행정기관·입법기관·사법기관은 관련 법률 규정에 따라 국가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제지하며 징벌해야 한다."

여기서 나타나듯이 홍콩 보안법은 홍콩 안보의 일차적 책임을 홍콩 당국에 부여하고 있다. 홍콩 당국이 가능한 빨리 입법을 처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홍콩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면서도 홍콩 자치권을 침해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홍콩 기본법 제2조는 "전국인민대표대회는 홍콩특별행정구에 이 법의 규정에 따른 고도자치를 수권하며, 홍콩특별행정구는 행정관리권, 입법권, 독립적인 사법권과 최종 심판권을 향유한다"고 규정했다. 전인대가 홍콩에 그 같은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 조항이 있기 때문에, 전인대에서 홍콩 보안법 초안이 통과됐지만 홍콩의 독자적인 입법권을 전인대 스스로 침해하기는 곤란하다. 홍콩의 독자성을 침해하면서 보안법을 제정하려면, 홍콩 기본법부터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기본법까지 침해하려는 시도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중국의 압력이 세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직접 지배를 관철시킬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4년 백서를 통해 홍콩 자치권을 대폭 제약하고 직접 지배로 나아갈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아직은 구상 내지는 희망에 불과하다. 지금으로서는 홍콩의 권력기관들을 통해 중국의 뜻을 관철시킬 수밖에 없다. 시진핑의 머리는 직접 지배를 향해 멀찍이 나아가 있지만, 그의 두 발은 아직 일국양제에 묶여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