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없는 부산시, 민노총 "노정협의체 만들자" 시청 점거
부산 구·군 공무원 노조, 3일째
부산시와 노정협의체 구성 요구
"시 갑질행정 중단하라" 주장도
"민노총이 부산시에 세력 확장"
by 박주영 기자입력 2020.05.29 17:07 | 수정 2020.05.29 17:13
여직원 성추행 사건으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사퇴하면서 권한대행 체제에 들어간 부산시가 부산의 구·군 공무원들로 이뤄진 민주노총 산하 전국공무원노조 부산지역본부(이하 ‘부산 전공노’)의 기습적 로비 점거 농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시청 주변에선 “민노총이 세력 확장을 위해 시장 없는 대행체제의 비상 사태에 빠진 부산시청에 대한 공략에 나섰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올려라. 해방 깃발 힘차게…끝없는 싸움 속에…” 29일 오전 8시30분쯤 부산 연제구 연산동 부산시청 1층 로비에 운동가요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갑질행정 중단하라”, “변성완 권한대행은 부산시민에게 당장 사과하라”는 구호도 외쳤다. 부산 전공노 소속 조합원 50여명이 지난 27일 오전부터 3일째 이 곳을 점거, 밤샘 농성을 벌이는 중이다.
집회에는 민주노총 부산본부, 민중당, 전교조 등의 관계자들도 함께 했다. 민노총 계열의 부산시청 로비 무단 점거는 지난해 4월 15일 강제징용노동자상 철거와 설치 문제와 관련, 민노총·전공노 조합원 등이 주도했던 3일간의 농성에 이어 두번째다.
부산 전공노 등은 지난 25~6월 20일까지 부산시청 뒤쪽 후정과 앞쪽의 2층 광장 등 2곳에 집회신고를 한 뒤 지난 27일 오전 시측과 실랑이를 벌이다 1층 내부로 밀고 들어와 로비를 점거했다. 시 측은 “신고된 집회 장소를 벗어나 시청 내부로 들어와 로비를 무단 점거한 것은 불법”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로비 무단 점거로 지난 28일 오전 이곳에서 열리기로 돼있던 ‘착한 소비·착한 나눔을 위한 민·관 공동결의대회’가 대회의실로 장소를 옮겨야 했다.
이 행사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 ‘정부·자치단체에서 지급한 지원금을 적극 소비해 어려운 지역 경기를 되살려 보자’는 캠페인에 불을 당기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이날 행사장을 찾은 A(57)씨는 “코로나 사태를 이겨내기 위해 시민들이 많이 참여하는‘착한 소비 붐’을 일으켜야 하는 자리였는데 트여진 공간의 로비를 이용도 못하고 쫓기듯 실내인 대회의실로 장소를 옮겨 행사를 진행, 그 취지를 무색케 했다”며 “그것도 공무원들이 나서 이런 상황을 만드니 쯧쯧…”이라고 말했다.
29일 부산시 공무원들로 이뤄진 부산공무원노조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꼴좋다. 나라 잘 돌아간다. 공무원이라는 사람이 일은 안 하고 뭐하는 짓이고’ ‘시끄러워서 민원을 못 보겠다’ 등등 로비를 지나는 시민들이 한 마디씩 툭툭 던지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없이 미안했다”, “명분도 없고 코로나가 다시 창궐하는 이 마당에 다닥다닥 붙어서 뭐하는 건가?”, “코로나 때문에 모두가 힘든데 지들만 힘들다고 난리들이니…”, “외부인 집회가 금지된 구역에서 공무원들이 민노총, 민중당까지 끌고 들어와 밤샘 농성이라…”는 등의 비난성 댓글들이 쏟아졌다.
이 노조 측은 점거 농성을 통해 ▲부산시와 부산 전공노와 노정협의체 구성 ▲재난지원금 선불카드 지급중단 사태에 대한 대시민 사과 ▲시의 갑질행정 중단 등을 내세우며 변 권한대행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노정협의체 구성’은 구·군 소속 공무원들이 구·군이 아닌 부산시를 사측으로 하고 협의를 하겠다는 것. 부산시엔 부산공무원노조가 따로 있다. 이 노조는 민노총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에 속해있다.
때문에 “부산시청에 복수노조를 만들어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려는 민노총의 정치적 계산이 깔린 농성”이라는 분석이 많다. 시 측은 이에 대해 “시가 시 공무원이 아닌 구 공무원과 교섭을 한다는 것은 맞지 않고 ‘교섭 창구 단일화’를 규정하고 있는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에도 위배되므로 노정협의체 구성은 불가하다”고 밝혔다.
재난지원금 선불카드 지급중단 사태는 부산시가 정부의 재난지원금을 선불카드로 받아가는 시민들이 전체의 20%쯤 일 것으로 예상, 카드를 준비했으나 실제로는 신청자가 폭주, 제 때 발급해주지 못하게 된 데 따른 것. 재난지원금 지급은 정부가 하는 일이지만 현장 집행은 지방자치단체에서 하고 있다. 지난 총선을 전후해 각급 지자체에서 경쟁하듯 지원금 지급 붐이 일면서 중앙 정부, 광역지자체, 기초지자체 등이 중복해 지급하는 곳이 많아졌고 그 업무는 대개 주민들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동사무소 등 기초지자체에서 맡아 했다.
따라서 구·군 등 기초지자체 공무원들은 자신 지역 외에 정부, 시도 등의 지원금을 지급하는 일에다 지난 4월 총선 업무까지도 겹쳐 ‘업무 과부하’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부산 전공노 측은 “구·군에서는 힘겹게 현장 업무를 하고 있는데 시는 ‘기준’만 내려보내고 내몰라라 하고 관심을 안 가진다”며 ‘시의 일방적 갑질행정’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시 측은 “선불카드 비중은 각 구·군 소관 부서와 협의를 통해 예상했는데 결과적으로 맞지 않아 시민들에게 불편을 드린 점은 깊이 사과를 드린다”며 “재난지원금 지급 업무는 국민을 위해 국가의 업무를 지자체가 대신하는 것인 만큼 힘들다하더라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시는 정부 재난지원금 지급 업무를 돕기 위해 205개동에 785명의 인력을 지원하고 지역 소상공인 긴급민생자금 지급 때도 타시도와 달리 하루 205명을 동사무소 등에 파견했다”며 “앞으로도 시민 편의 증진을 위한 구·군과의 협조, 협력은 더욱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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