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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위치한 도미노 공원. 뉴욕/AFP 연합뉴스

[크리틱] 코로나 시대의 공원 사용법 / 배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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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한|서울대 조경학과 교수·‘환경과조경’ 편집주간

초록 잔디밭에 새긴 하얀 원에 갇혀 공원을 즐기는 사람들. 드론으로 찍은 조감 사진의 잔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최근 국내외 여러 매체가 앞다퉈 보도한 이 화제의 장면을 두고 “공원의 인간 주차장”(human parking spots in the park)이라는 촌평이 잇따랐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도하기 위해 분필 페인트로 그린 지름 8피트(약 2.5m)의 원형 띠 안에서 미리 역할을 나누기라도 한 듯 휴식, 일광욕, 연애, 피크닉, 운동, 독서, 사색에 열중하는 뉴요커들의 모습. 아마도 코로나 시대가 낳은 가장 역설적인 도시 풍경의 하나로 기억될 것 같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벽 하나를 내줘도 손색없을 이 조감 사진은 초현실적인 시절을 현실적으로 살아내야 하는 역설의 기록이다. 같은 규격의 원이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행동은 제각각이다. 다이버용 모자에 공기 여과기가 달린 마스크를 쓰고 책을 읽는 사람, ‘홈트’ 앱을 켜놓고 유연성 강화 운동에 심취한 사람, 절절한 고독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원의 경계선을 따라 걷는 중년, 마스크는 물론 웃옷까지 벗어던지고 햇볕에 몸을 맡긴 커플, 원 하나에 네 명 이하라는 규칙을 어기고 빼곡 모인 십대 그룹, 좁은 피크닉 보자기에 누워 나른한 오후를 즐기는 연인, 아이의 걸음마에 마냥 흐뭇하기만 한 부부. 여느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행동들을 잘라 붙인 한장의 콜라주처럼 보인다.

원형 ‘인간 주차장’이 줄 맞춰 배열된 이 공원은 2년 전 개장한 뉴욕 브루클린의 새로운 핫 플레이스, 도미노 공원이다. 150년 만에 문을 닫은 도미노 설탕공장과 윌리엄즈버그 브리지 일대를 재생시키는 촉매제로 투입된 도미노 공원은, 공장 경관 특유의 거친 미감을 만끽하며 이스트강 너머 맨해튼 스카이라인의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로 급부상했다. 불과 몇 달 전 가을처럼 이 공원을 마음껏 거닐면서 윌리엄즈버그를 사랑한 소니 롤린스의 재즈 색소폰을 들으며 난만한 햇살과 강바람에 취할 수 있는 날은 언제쯤 다시 올 것인가.

서른 개 원 안에 펼쳐진 도미노 공원의 진풍경을 영상에 담은 한 저널리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 찍은 비디오를 2019년의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면, 실재하는 현실의 장면이 아니라 디스토피아를 다룬 할리우드 텔레비전 쇼의 한 장면이라고 여길 것이다.” 도미노 공원에 동그라미가 새겨진 지 사흘 만에, 따뜻한 햇볕과 평화로운 언덕으로 이름난 샌프란시스코 미션 지구의 돌로레스 공원도 똑같은 물방울무늬 새 옷을 입었다.

세계의 크고 작은 공원들이 유례없는 인파로 북적인다. 유럽 남부의 무더위가 시작되고 서구 여러 국가의 봉쇄령이 완화되면서 해변과 공원에서는 이미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상태라는 외신이 쏟아지고 있다. 부분적인 경제 활동이 재개된 미국 대부분의 도시에서도 공원과 광장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지난 주말에 다녀온 성수동의 서울숲은 신선한 공기와 따사로운 봄볕을 갈망하는 마스크 쓴 시민들로 대만원이었다. 호젓한 숲길 산책이나 고즈넉한 숲 그늘 아래의 사색은 아예 기대할 수 없었다.

대감염의 반복과 장기화가 전망되는 지금 우리는 공원의 가치와 역할을 새삼 재발견하고 있다. 도미노 공원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무기력한 도시의 처연한 자화상이나 위트 넘치는 일회성 퍼포먼스 정도로만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코로나 이전의 도시를 그리워할 것이 아니라, 도미노 공원의 작은 실험처럼 감염된 도시와 슬기롭게 동거할 수 있는 공원의 사용법을 하나씩 마련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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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션 지구의 돌로레스 공원. 샌프란시스코/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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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션 지구의 돌로레스 공원. 샌프란시스코/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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