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4.0] "놀라지 말라"는 김종인의 기본소득안, 어떤 형태일까

[김민철 기자의 복지4.0]
수년전부터 기본소득 도입 논의 주장
기존 현금복지 개편형? 추가형?
얼마 주고 어떻게 재원 마련이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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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29 16:24 | 수정 2020.05.29 16:57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의 첫번째 정책 의제로 기본소득 카드를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져 어떤 형태의 방안인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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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전국조직위원장 회의에 참석하며 질문받고 있다./연합뉴스

김 위원장 쪽 관계자는 한 언론을 통해 “김 위원장은 기본 소득과 전국민 고용보험제 등에 입장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사회안전망 전반에 대한 대책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도 27일 국회 특강에서 "변화 없이는 당 생존이 불가능하다"며 "경제민주화보다 더 새로운 것을 내놔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소득(basic Income)제는 나라에서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도록 주기적으로 상당한 액수를, 그것도 자산 조사나 근로 요구 없이 무조건적으로 주는 제도다. 지난 2016년 스위스가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제를 국민투표에 부쳤을 때 조건, 즉 모든 복지를 없애는 대신 전 국민에게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284만원)을 지급하는 것이 가장 기본소득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다.
원래는 4차 산업혁명 진행에 따라 인공지능(AI)이 점차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는 두려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고 양극화가 깊어지는 점에 대한 우려 때문에 나온 개념이다. 일부 시·군에서 실시하고 있는 청년·농민 수당 등은 자격 조건이 한정적이라는 점에서 본래 기본소득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김 위원장이 기본소득 선공을 생각하는 것은 지난 총선 패배에 긴급재난지원금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분석이다. "코로나 사태로 정부가 합법적 현금 살포의 기회를 갖게 됐는데 통합당은 대책이 없었다”는 원희룡 제주지사의 말(27일자 조선일보 인터뷰)이 이 같은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당이 다음 대선 이슈로 기본소득을 내걸 가능성이 많은데, 김종인 위원장이 이를 선점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이 기본소득 논의를 부르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엄청난 재원이다. 기본소득 도입에 드는 예산을 계산하는 것은 간단하다. 진보 쪽에서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얘기하는 월 30만원이라면 180조원이 필요하다. 올해 정부 예산 512조원의 35%이고, 보건복지부 전체 예산 82조원의 2.2배 정도다. 서상목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존 복지제도를 대폭 재건축하는 것을 전제로 얘기한 월 50만원(아이들은 절반, 4인 가족 기준 월 150만원)으로 할 경우 대략 300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기본소득 지급 방식은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주로 진보 진영은 기존 복지제도를 유지하고 여기에다 기본소득을 추가하자는 쪽이고, 서상목 전 장관 등은 “복지제도가 너무 복잡해져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다”며 “기초생활보장, 실업수당, 기초연금, 아동수당, 근로장려세제 등 기존 복지제도는 많이 없애면서 기본소득을 도입하자”는 입장이다.

김종인 위원장이 어떤 기본소득 방안을 염두에 두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2016년 민주당 비대위 대표 시절에도 경제민주화 과제의 하나로 기본소득 도입을 꼽았다. 그는 대한상공회의소 조찬간담회에서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파악하지 않으면 미래를 끌고 가기 굉장히 어렵다”며 “기본소득의 크기가 어떤가에 따라 달려 있겠지만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25년 지금의 신기술이 엄청나게 성숙하고 4차 산업혁명이 완성기에 들어가면 많은 중산층이 가졌던 일자리가 (기술에 의해) 대체될 수 밖에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30년 안에 소득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지고 생산해도 그 생산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계층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얘기는 기본소득 도입 취지에 대한 설명이라 제도 설계가 어느 쪽에 가까운지 짐작하기는 어렵다.

김 위원장도 지난 27일 “기본소득제 논의는 복잡하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단순히 추가로 얹어주자는 내용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김 위원장이 생각하는 기본소득 방안이 기존 현금성 복지 제도 개편을 전제로 하는 쪽에 가까운지, 더 얹어주자는 쪽에 가까운지 궁금증을 낳고 있다. 서상목 전 장관은 29일 “김종인 기본소득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를 주느냐,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느냐의 문제”라며 “전 국민에게 월 30만원을 주는 방안이라면 180조원이 드는데 절반은 지금의 현금성 복지제도를 개편하고 절반은 조세감면제도를 정비해 마련할 수 있다는 계산이 이미 나와 있다”고 말했다.

김용하 교수는 “여당이 기본소득을 만지작거리고 국민들이 재난지원금으로 ‘공짜 돈맛’을 본 상황에서 야당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그냥 넘어가기는 어려운 것이 정치 현실”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급하게 기본소득안을 내놓을 생각 말고, 공당이라면 어떤 성격의 기본소득안을 도입할지, 재원은 어떻게 조달할지 등에 대해 논의하고 여론을 수렴해 내놓아야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선심성 공약 경쟁 차원에서 어설픈 안을 내놓으면 나중에 여당이 기본소득을 추진할 때 ‘너희도 주자고 하지 않았느냐’고 되치기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민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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