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한익스프레스 참사' 한 달…“안전한 일터 만들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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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이천 물류창고 중대재해 책임자 한익스프레스 처벌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유가족이 희생자의 영정을 어루만지고 있다. 김창길 기자

“사랑하는 내 아우야. 불구덩이 속에서 너를 앞에 세워 탈출했더라면 살아났을까. 손을 붙들고 나왔더라면 살았을까. 이 못난 형은 하루하루가 자책과 고통 속에 힘이 드는구나. 누가 우리 형제를 이렇게 생과 사로 갈라놓았을까….”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참사’ 생존자 민경원씨가 동생 민경진씨에게 쓴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민씨는 참사 당일 동생과 함께 지하 2층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불을 발견하고 “불이야!”라고 외쳤다. 10초도 지나지 않아 출입문 3곳이 화염에 덮였다. 동생과 함께 빠져나오려 했지만 뒤따라오던 동생은 결국 숨졌다.

29일로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참사가 벌어진 지 한 달이 됐다. 유가족 80여명이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으로 모였다. 유가족들은 희생자 38명의 영정사진을 목에 걸었다. 모두 검은색 옷차림에, 가슴팍엔 ‘근조’ 리본이 달려 있었다. 민씨의 편지에 흐느끼며 눈물을 흘리던 유가족들은 정부에 중대재해 책임자인 기업을 처벌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유가족들은 진상 조사조차 늘어지고 있다고 했다. 유가족 법률대리를 맡은 법률사무소 마중의 김용준 변호사는 “유가족들은 수사기관에서 들은 내용이 아무 것도 없다”며 “구속 수사를 요청한 지도 2주가 지났다. 지금까지 발주사, 시공사, 시행사, 협력사 등 책임자 중 단 한 명도 구속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2008년 이천 코리아2000 냉동창고 화재 참사 당시에는 일주일 안에 중간 수사 결과가 발표됐고 책임자가 구속됐다”며 “왜 지금은 한 달이 지나도록 어떤 발표도 없나. 유가족들과 망인들은 이대로 잊혀지고 참사 진상이 왜곡되는 게 두렵다”고 했다.

이들은 중대재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정부에 하루 빨리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박종필 유가족 수석대표는 “대통령께서 ‘안전한 일터로 산재를 줄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어느 정부 부처도 산재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며 “노동자가 존중받는 사회, 노동자가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안전한 일터를 꼭 만들어달라”고 말했다. 이어 “사람을 죽인 회사가 책임을 지지 않으면 회사의 생존이 어려워지길 바란다. 책임 있는 회사나 대표가 강력한 처벌을 받길 바란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했다. “유가족들이 진상 조사 절차에 참여할 수 있고 진행 상황을 알 수 있길 바란다”고도 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발주사인 한익스프레스 서울 서초구 본사 앞을 찾아 참사 책임을 묻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후 경기 이천 모가면 화재 현장을 찾아 시행사와 하청업체들에 사과를 촉구하고, 합동분향소에서 추모식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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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이천 물류창고 중대재해 책임자 한익스프레스 처벌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