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조작수사 경험... 한명숙 사건, 검찰이 그림 그린 것"
[박지원 인터뷰 - 상] 법사위만 12년, 박지원과 검찰의 질긴 악연
by 글: 소중한(extremes88)
"저도 검찰의 조작수사를 경험했잖습니까."
박지원 민생당 의원은 4년 재판 끝에 무죄를 받아낸 '저축은행 사건'을 거론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을 거론했다. 유죄 판결이 난 해당 사건에 대해 그는 "(검찰이) 그림을 그려서 (한만호 등에게) 진술을 강요하고 플리바게닝을 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최근 재판이 시작된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와 관련해서도 "무죄가 나올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유재수라는 1급 공무원에게 사표를 내도록 처리한 것은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가진 감찰) 종결권에 따른 것으로 봐야한다"라며 "1급 공무원에게 사표는 큰 형벌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 박 의원은 2008년 재선 국회의원 때부터 12년 동안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소속돼 있었다. 1992년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된 뒤 김대중 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그는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진행된 대북송금 특검으로 5년 동안 정치공백기를 가졌다. 이때 검찰과의 악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악연은 2008년 국회에 입성한 그가 '비인기 상임위'인 법사위에 배치되면서 계속 이어졌다. 공교롭게도 이명박 정부의 첫 검찰총장 후보자를 낙마시키면서 'DJ(김대중 전 대통령) 오른팔의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오마이뉴스>는 국회의사당 인근 오피스텔에서 26, 27일 이틀에 걸쳐 박 의원을 인터뷰했다. 그의 12년 법사위 생활과 검사들과의 인연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법사위 데뷔] "아무도 안 가려고 한다기에..."
- 2008년 재선 때부터 계속 법사위에 소속돼 의정활동을 해왔습니다. 당시 법사위가 비인기 상임위였던 것으로 아는데 율사 출신이 아님에도 법사위를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김대중 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등 소위 말해 할 거 다했었죠. 이후 대북송금특검으로 5년의 정치적 공백을 보냈고요. 그리고 국회에 돌아온 겁니다. 다들 좋은 상임위 가려고 박 터지게 움직이잖아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젖과 꿀이 흐르는 국토교통위'라고 그랬어요. 그리고 산업자원위, 보건복지위, 교육문화위(현재 교육위와 문체위가 분리되기 전) 이런 데를 국회의원 70~80%가 원합니다.
당시 (상임위를 배정하는) 원내대표가 원혜영이었어요. 제가 원 의원에게 '내가 좋은 데 간다고 하면 나쁜 놈이고, 의원들이 제일 안 가려고 하는 곳이 어디냐' 그랬죠. 그 착한 사람이 정말 골치 아팠던 모양이에요. '환노위와 법사위를 잘 안 가려고 하는데, 그 중에서 법사위를 더 안 가려고 합니다'라고 그래서 제가 법사위 간다고 한 거죠. 사실 내가 율사도 아니고, 법률 지식이 해박한 것도 아니잖아요."
- 말 그대로 빈곳 찾아서 간 거네요.
"그렇죠. 속된 말로 저는 해먹을 거 다 해먹은 사람인데 좋은 데 가고 싶다고 하면 되겠어요. 이후에 제가 원내대표도 많이 해봤잖아요. 다선 의원들이 좋은 데 가려고 그러면 제가 욕했어요."
- 그때 민주당 구성원이 박지원, 박영선, 우윤근, 이춘석 의원이었죠.
"그리고 유선호 의원이 법사위원장이었죠. 박지원, 박영선, 우윤근, 이춘석 이렇게 네 명은 항상 사전에 논의를 거친 뒤에 상임위 회의에 들어갔어요. 어젠다를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지, 그래서 누가 어떤 내용으로 공격할 것인지 논의를 하는 거죠. 이춘석이 맨 먼저 치고 나가고, 나랑 박영선이 돌아가면서 공격수 노릇을 하고, 우윤근이 기승전결의 결을 담당했죠."
- 법사위에 있다 보니까 검찰과 자주 맞닥뜨렸더라고요. 당시 첫 국정감사에서 "헌법재판소와 서울고법에 갔을 땐 답변 소리가 너무 작아 안 들렸는데, 서울고검에 오니까 목소리가 너무 크다"는 말을 했던데, 일종의 신경전이었습니까.
"검찰은 개혁돼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어요. 사법부의 경우 목소리가 작고 겉으로나마 겸손하단 느낌을 받았는데, 검찰은 위에 군림하려고 하고 떵떵거리는 거 같아 이를 질책했었죠."
[천성관] "반드시 터뜨립니다, 다만 확실한 것만"
- MB 정부 첫 검찰총장 후보자였던 천성관의 낙마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돌아온 박지원'이 청문회 스타로 떠오르는 계기가 됐죠. 당시 '15억5000만원 채권자' 박경재씨와 '밀착 관계'를 밝혀내는 여러 자료를 터뜨렸는데, 그러한 자료는 어떻게 입수하신 겁니까.
"(웃음) 제가 기자들과 관계가 좋았잖아요. 제가 인사청문회 대상 고위공직자를 여럿 낙마시켰는데, 기자들과 만나 물어보면 꼬투리가 나오고, 이를 토대로 관계자들에게 툭툭 물어보면 제보가 들어왔어요. 무엇보다 들어온 제보는 반드시 터뜨려야 합니다. 그래야 많은 이들이 '아, 저 사람한테 제보하면 변화가 생기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근데 저는 어떤 경우에도 증거가 있어야 터뜨렸어요. 확실한 것만 잡아서 합니다."
- 천성관 후보자의 낙마 이후, 제보 경위에 대한 검찰의 내사가 있었습니다. 검찰과 청와대의 교감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왔죠. 검찰이 박지원을 노린다는 이야기가 그때부터 나왔던 것 같습니다.
"대개 권력기관에 있던 사람은 권력을 추궁하지 못합니다. 왜냐면 권력의 무서움을 알거든요. 저는 권력의 핵심에 5년간 있었잖아요. 하지만 비리가 없어요. 그래서 자신 있게 공격했던 겁니다. 참 무서운 협박도 들어오죠. 그때마다 자기가 극복해야지 어쩌겠어요."
- 천성관 후보자의 낙마 후 '대북송금특검으로 고초를 겪은 박지원이 국회의원으로 돌아와 검찰에 제대로 한 방 먹였다'는 세간의 평가가 있었습니다.
"그거야 뭐 갖다 붙인 말이죠. 그냥 국회의원으로서의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때 천성관 아들의 결혼식이 또 이슈였잖아요. 한나라당(미래통합당 전신) 의원 한 명이 천성관에게 '교외 조그마한 곳에서 결혼식을 할 정도로 청빈하게 살았다'고 묻더라고요. 저는 이미 청첩장을 갖고 있었거든요. 최고급 호텔인 '워커힐 W호텔'이 청첩장에 적혀 있었어요. 사실 저 역시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아들 결혼식 문제는 안 건드리려고 했어요.
근데 먼저 한나라당 쪽에서 청빈하다는 식으로 나오니까 그걸 깠죠. 청문회 끝나고 그날 저녁에 김경한 당시 법무부장관에게 전화가 왔더라고요. 저랑 개인적으로 친했거든요. 김 장관이 '확실한 자료가 또 있습니까' 물어요. 그래서 '있습니다. 내일 터뜨리면 아마 날아갈 겁니다. 빨리 시키십쇼'라고 그랬죠. 그때 결혼식 사진을 갖고 있었거든요. 암튼 전화통화 후 2, 3시간 이후에 사퇴하더라고요. 그러면 그 사진은 안 까는 거죠. 망신 줄 것도 아니고."
- 한명숙 전 국무총리 검찰 수사에 대한 비판이 최근 정국을 달구고 있습니다.
"2009년에도 제가 많이 비판했었습니다. (검찰이) 그림을 그려서 (한만호 등에게) 진술을 강요하고 플리바게닝을 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검찰의 조작수사를 경험했잖습니까. 검찰에 따르면 '보해저축은행 회장이 박지원을 찾아왔고, 박지원이 김석동 금융위원장에게 (은행 퇴출을 막아달란) 전화를 걸었으며, 회장이 3000만 원이 담긴 쇼핑백을 놓고 갔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 당시 김석동 위원장이 어디 있었는지 찾아봤어요. 김종창 금감원장과 함께 상임위 회의장에서 답변을 하고 있었더군요. 그래서 검찰에 속기록까지 내면서 '상임위 답변 중엔 화장실도 못가고 전화도 못 받는다'라고 그랬죠. 검사가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피고인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겁니다.
근데 검찰이 또 '김종창 원장이 2, 3분 답변하는 동안 김석동 위원장이 잠깐 나와 박지원의 전화를 받았다'고 그러는 거예요. 국회방송을 통해 당시 녹화영상까지 찾아냈죠. 그 영상을 보니까 김종창 원장이 답변할 때 옆에 앉은 김석동 위원장의 팔이 요만큼 보여요. 그 영상은 곧바로 검찰에 내지 않았어요. 검찰이 또 조작할 수 있잖아요. 공판중심주의니까 재판 때 제출했죠. 재판에서 그 영상을 틀며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재판장님, 금융위원장은 전화를 받으러 가며 자기 팔을 잘라놓고 갑니까.' 결국 무죄 받았죠."
[이상득] "MB 공격하면 조용한데, SD만 공격하면..."
- 2010년엔 '스폰서 검사' 건으로 법사위가 시끄러웠습니다.
"제보를 받았습니다. 정말 창피한 일이죠. 어떤 분이 CD를 보냈어요. 내가 한 번 재생을 해보니까 검사들이 룸살롱에서 난잡하게 노는 모습이에요. 이걸 MBC와 <오마이뉴스>에 보냈죠. 진짜 난잡한 것들을 기자들이 잘 편집해서 썼더라고요. 후속 보도에서 룸살롱 마담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가씨들이 검사가 있는 방엔 절 대 안 들어가려고 한다. 그래서 돈을 두 배로 줘야 한다.' 암튼 그걸로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어졌죠."
- 이후 씨앤(C&)그룹 연루설이 터졌습니다. 당시 "검찰이 씨앤그룹과 나의 연루설을 흘렸다"고 비판했었잖아요.
"그때 검찰이 기업인들을 불러다 무조건 '박지원을 불어라' 했다는 거예요. 근데 나는 씨앤그룹 회장을 몰라요. (씨앤그룹이) 갖고 있던 목포의 조선소가 어려워져서 전남도지사, 목포시장, 씨앤그룹 회장이 저를 찾아와 '살려 달라'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연판장에 서명해준 것밖에 없었죠."
- 지금도 "검찰이 흘렸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으신가요.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그때만 해도 피의사실 공표를 생중계하듯 불어줬잖아요. 그래서 제가 기자들한테 '인권을 생각하는 언론이 돼야지 검찰 발 기사만 쓰고 왜 피고인 말은 안 듣냐'고 그랬어요. 지금도 사실 그러잖아요."
- 2011년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 후 민주당 저축은행 진상조사TF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그때 박태규 리스트를 폭로하며 당시 실세였던 (MB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과 맞붙었습니다.
"그 시절엔 원외 인사가 당대표인 경우가 많았잖아요. 그래서 원내대표였던 제가 국회 정당대표 연설을 많이 했죠. 그때 제가 '형님을 쳐내라, 그래야 대통령이 성공한다' 이렇게 이야기 하니까 한나라당 의원들이 삿대질하고 엄청 소리를 질러요. 권력 서열 1위가 SD(이상득), 2위가 시중(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3위가 MB라는 시중의 말도 있었잖아요. 아무튼 연설을 마치고 본회의장을 나오는데 기자들이 붙어요. 그래서 '대통령을 공격하면 조용한데 SD를 공격하니까 벌떼처럼 일어난다'고 그랬죠(웃음). 암튼 그만큼 SD의 권력이 강했죠."
- 박태규 리스트는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누가 갖다 줬으니까 알죠(웃음). 박태규 회장과 지금은 (사이가) 좋아요."
- 그렇게 저축은행 진상조사TF 위원장까지 했었는데, 2012년 저축은행 수사가 박지원을 향했습니다.
"저를 옥죄기 위해 정부와 검찰이 움직였어요.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경찰의 수사 개시권 명문화, 검찰청법 53조(검사의 명령에 대한 경찰의 복종 의무)의 삭제를 사개특위와 법사위에서 해냈거든요. 그때 한나라당 간사가 주성영 의원이어서 같이 합의를 했고, 이인기 한나라당 의원이 행안위원장이었는데 경찰 출신인 그쪽도 힘을 많이 보탰죠. 근데 주 의원, 이 의원 모두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았고 직후 총선에서 출마도 못했어요."
- 그들 모두 검찰에 잘못 보여 보복을 당한 거고, 박지원의 경우 저축은행 수사가 그 보복이었다는 건가요.
"그렇죠. 조작해서 나를 잡으려고 했죠. 그때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 산하에 저축은행비리 합동수사단이 꾸려졌었거든요.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내 사건만 중수부로 넘겼어요. 합동수사단에서 나를 담당한 사람은 이진동 당시 부부장검사와 윤대진 합동수사단 1팀장이었습니다(이후 재판에 넘겨진 박 의원은 2016년 6월 무죄 판결을 받음 - 기자 주)."
[조국과 윤석열] "둘 다 지지했지만..."
- 2013년엔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이 화두였습니다.
"채동욱, 박영선, 저 이렇게 친했어요. 속기록 봐보면 그때도 제가 많이 싸웠을 겁니다.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지만요."
- 당시 채동욱 총장의 상황과 지금 윤석열 검찰총장의 상황을 비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한 거니까,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때) 의무적으로 윤석열을 감쌌죠. 요즘 제 입장이 아주 난처해요. 지난 총선 때 목포의 민주당 극렬 지지자들이 '조국 살리고 윤석열 죽이라'는 말을 유세에서 하라는 거예요. 그건 내 양심상 못하겠다고 했죠. 저는 보수에서도 욕을 먹고, 진보에서도 욕을 먹고 그런 꼴입니다. 그러나 바른 말을 해야죠."
- 처음엔 윤석열이 검찰총장에 지명되는 걸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실세에게 '지명하지 마라. 이 사람은 검사다. 걸리면 강하게 수사한다. 나도 검찰에 혼났지만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다 죽지 않았냐. 임기 말에 너희도 안 걸린다는 보장이 없다'라고 말했죠. 근데 1, 2주 뒤에 그 분이 '문 대통령은 측근이든 친인척이든 비리가 있으면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러면 적임자다' 그랬죠."
- 이후 조국 법무부장관과 윤 총장 사이에 마찰이 생겼습니다.
"근데 조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는 무죄가 나올 것 같습니다. 유재수라는 1급 공무원에게 사표를 내도록 처리한 것은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가진 감찰) 종결권에 따른 것으로 봐야죠. 1급 공무원에게 사표는 큰 형벌이에요.
아무튼 같은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사이에 알력이 생겼으니 국민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워 합니까.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도 검찰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회와 사회의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했죠. 이걸 제일 잘 아는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고 그래서 조 전 장관을 임명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조 전 장관을 높이 평가해 '개혁이 우선이다. 조국이 필요하다'라고 말했고요. 한편으론 산 권력에 칼을 댈 수 있는 소신 있는 검찰총장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둘 다 지지했어요.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고 말았는데 모양새가 안 좋은 건 사실이죠."
*<[인터뷰-하] "민주당이 법사위원장 해야... 시대요구가 그렇다">(http://omn.kr/1nrce)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