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복싱 새 역사' 오연지·임애지 "올림픽 1년 연기?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준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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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복싱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는 라이트급 오연지(왼쪽), 페더급 임애지. 김용일기자, 제공 | 대한복싱협회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올림픽이 연기된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해서 좋을 게 없더라.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준비하겠다.”

한국 여자 복싱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따낸 라이트급(60㎏) 간판 오연지(30·울산광역시청)와 페더급(57㎏) 기대주 임애지(21·한국체대)는 28일 스포츠서울과 통화에서 이같이 입을 모았다. 한때 인기종목이었다가 내부 파벌 다툼과 국제 외교력 실종 등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던 한국 복싱은 묵묵히 자기 길을 걸으면서 경쟁력을 쌓은 두 여자 복서 존재로 부활 디딤돌을 놓았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오연지와 임애지는 열악한 국내 환경에도 불굴의 의지로 복싱 인생 목적지와 같은 올림픽 오륜기 앞에 서게 됐다.

둘은 지난 3월 요르단 암만에서 끝난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에서 체급 상위 4명까지 주어지는 올림픽 티켓을 손에 넣었다. 페더급 임애지가 8강에서 인도의 사크시를 5-0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으로 따돌리며 한국 여자 선수 사상 첫 올림픽 본선행에 성공했고, 라이트급 오연지도 8강에서 호주의 안야 스트리즈먼을 상대로 5-0 판정승했다.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2015, 2017년 아시아선수권 2연패를 달성했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건 오연지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4강에서 태국의 수다포른 시손디, 결승에서 인도의 시므란지트 바트를 상대로 연달아 5-0 심판전원일치 판정승하며 우승했다. 그야말로 ‘퍼펙트 도쿄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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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암만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복싱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 당시 모습. 출처 | 올림픽 채널 중계방송 캡처

여자 복싱은 지난 2012년 런던 대회에서 첫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지만 한국은 한 번도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지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지역 예선에서는 편파 판정 논란이 불거지면서 태극낭자가 일찌감치 탈락했다. 국제 복싱계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과거 지나친 홈 어드밴티지에 따른 일종의 미운털이 박히면서 선수가 판정 희생양이 되는 일이 잦았다. 오연지도 8강에서 쏭잔 타싸마리(태국)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도 판정패하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 커다란 상처를 받고도 오뚝이처럼 일어난 오연지는 이번 예선에서 심판 판정 변수를 제어할 정도의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꿈을 이뤘다. 그는 “솔직히 4년 전 리우 예선 실패 이후 많이 힘들었다. 이번엔 준비도 많이 했지만 가장 달랐던 건 마음가짐이다. 올림픽 티켓은 머릿속에 없었고 ‘후회 없이 내 경기만 하자’고 여겼다.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현란한 스텝으로 수비에 능하고 받아치는 타격이 일품인 ‘아웃복서’인 그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기본기를 다지며 초심을 잃지 않았다. 여기에 성공과 실패 경험이 쌓이고 스스로 마음을 제어하면서 한층 정교하고 노련한 경기력을 뽐냈다. 오연지는 “4강에서 태국 선수와 만났을 때 경기가 과열됐는데 예전 같으면 나도 흥분하면서 달려들었다. 이번엔 흥분하지 않고 내 플레이가 나오더라”고 웃었다.

오연지도 ‘투지 왕’으로 뽑은 임애지는 아직도 올림픽 티켓을 따낸 게 얼떨떨하다. 지난 2017년 세계여자유스선수권에서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기며 일찌감치 기대주로 불린 그는 요르단 땅에서도 사고를 쳤다. 임애지는 “나도 올림픽 티켓은 생각하지 않고 매 경기 상대 선수만 신경 썼다. 막상 (올림픽 티켓을) 따냈을 때 생각만큼 기뻐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음엔 마음껏 기뻐하고 싶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유스 시절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을 따낸 뒤 대학에 와서는 메달이 없었다. 스스로 실망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이번에 전환점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어느 종목이든 오름세를 타는 선수는 흐름과 감각을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 둘은 도쿄행 확정의 기쁨도 잠시, 코로나19 여파로 올림픽이 1년 미뤄지며 변수와 맞닥뜨렸다. 특히 복싱처럼 실내 종목은 코로나19 여파로 정상 훈련에 제약을 받아 몸 관리에 어려움이 따랐다. 하지만 ‘긍정의 힘’으로 돌파하고 있다. 오연지는 “공원이나 산을 뛰면서 최대한 몸을 유지하려고 했다. 대회 자체가 없다보니 (실전) 체력을 유지하는 게 쉬운 건 아닌데 그렇다고 내가 무언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흐트러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애지도 “1년 연기가 결정됐을 때 오히려 ‘하늘이 내게 더 열심히 하라는 기회를 주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전까지는 내가 ‘(올림픽에서도) 메달을 딸 수 있을까’ 물음표였는데, 지금은 느낌표가 됐다”며 “1년 동안 혼신의 힘으로 준비해서 꼭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