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노태우 '참회의 꽃'…40년만에 5·18 묘지에 바쳤다
신군부 학살 책임자 첫 헌화 "5·18민주영령 추모합니다"
장남 재헌씨 아버지 대신해 5·18묘지 참배
by (광주=뉴스1) 박준배 기자, 박진규 기자, 전원 기자, 허단비 기자'5·18민주영령을 추모합니다. 제13대 대통령 노태우'
80년 신군부의 핵심으로 전두환과 함께 5월 광주학살의 책임자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40년 만에 5월영령에게 참회의 꽃을 바쳤다.
투병 중인 노 전 대통령은 29일 장남 노재헌씨를 통해 5·18민주화운동 학살에 대한 사죄의 뜻을 전했다.
노 전 대통령 장남 재헌씨는 이날 오전 11시30분쯤 검은색 정장에 검은색 넥타이 등 상복 차림에 마스크를 쓰고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았다.
민주의문 앞에서 방명록에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리며 대한민국 민주화의 씨앗이 된 고귀한 희생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고 적었다.
5·18민주묘지 제단까지 이동해서는 '5·18민주영령을 추모합니다. 제13대 대통령 노태우'라고 적힌 조화를 헌화하고 분향했다.
참배에는 김후식 전 5·18부상자회장과 노덕환 미주 평통 부의장 등 5명이 함께했다.
재헌씨는 헌화·분향이 끝나고 김의기·김태훈·윤한봉 열사의 묘 등을 찾아 참배했다. 재헌씨는 무릎을 꿇고 묘비를 쓰다듬으며 5월영령을 추모했다.
재헌씨의 5·18민주묘지 참배는 지난해 8월에 이어 두 번째, 광주 방문은 세 번째다.
지난해 8월23일 5·18민주묘지를 찾아 헌화·분향 후 윤상원·박관현 열사와 전재수 유공자 묘역을 참배했다.
지난해 12월엔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를 방문해 김 전 대통령 기념전시관을 둘러보고, 오월어머니집을 찾아 5·18유족들과도 만나 사죄의 뜻을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이 투병 중이라 직접 참배하고 사죄하지는 않았으나 80년 광주 학살 책임자 중 한 명이 5월 제단에 직접 헌화하고 사죄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노 전 대통령은 신군부의 핵심으로 5·18민중항쟁 유혈진압과 학살 책임의 당사자다.
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자신이 지휘하던 제9보병사단에서 2개 보병연대를 동원해 반란을 지원하고 이튿날 쿠데타에 저항하다 쫓겨난 장태완의 후임으로 수도경비사령관(현 수도방위사령부)에 올랐다.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과정에서는 자위권 발동 결정과 헬기 지원 등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수경사령관으로 5월21일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을 결정했던 회의에 전두환과 함께 참석했다. 5월21일 수경사의 지휘통제를 받는 502대대 소속 공격헬기를 광주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 전 대통령은 1995년 5·18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신군부 핵심 인사 18명과 함께 구속돼 재판을 받았다.
검찰과 법원은 12·12, 5·17, 5·18을 군사반란과 내란행위로 판단했고 전두환 무기징역, 노태우 징역 17년형 등 핵심 관련자들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사면 후 출소한 노 전 대통령은 5·18민중항쟁과 관련한 망언으로 지탄을 받기도 했다.
1995년 10월5일, 서울 호텔신라에서 열린 '경신회'(경북고 졸업생모임) 주최 간담회에서 "문화대혁명 때 수천만명이 희생을 당하고 엄청난 피를 흘렸다'며 "거기에 비하면 광주사태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해 비판을 받았다.
지난 2011년 출간한 회고록에서는 "5·18운동은 유언비어가 진범이다.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 시민들 씨를 말리러왔다'는 등 유언비어를 듣고 시민들이 무기고를 습격했다"고 왜곡했다.
5·17계엄확대에 대해서도 "서울의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치안유지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신군부의 내란을 합리화해 논란이 됐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장남 재헌씨가 잇달아 광주를 찾아 사죄의 뜻을 전하고 회고록 내용 개정 등도 약속하면서 광주 민심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누그러지는 모습이다.
이날 5·18묘역에 들렀다가 우연히 재헌씨 일행을 목격한 위유환씨(76·광주 광산구 우산동)는 "고맙다"고 말했다.
위씨는 "전두환은 세금도 안내고 사과 한마디 안하는데, 노태우 아들은 잇달아 광주를 찾아 사죄해 고맙게 생각한다"며 "발포명령자가 누구인지를 비롯해 5·18 진실이 하루 빨리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nofatejb@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