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강간 미수 영상'과 판박이... 소름끼치는 '1초'

[그 날] 공포의 CCTV ① 꼭 닮은 사건 판결문에 나타난 공통점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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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쏟아지는 뉴스 속에 잊혀지는 그 날의 사건을 되짚어 봅니다.[편집자말]

소름 끼쳤다.

여성이 집으로 들어갔다. 바로 뒤, 모자를 쓴 남성이 나타났다. 조심스러운 걸음이었다. 문이 닫히려는 그 순간, 뒤에서 따라 온 남자가 왼손을 문에 갖다댔다. 문이 닫히는 걸 막으려는 듯 했다. 간발의 차이로 문이 닫히자, 곧바로 남자는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노크도 했다. 그리고 서성댔다. 또 서성댔다. CCTV에 찍힌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무섭다"고 했다. "너무 무섭다"고 했다. 한 누리꾼은 이렇게 적었다.

"1초만 늦었어도 진짜...."

2019년 5월 28일, 이 섬뜩한 상황을 두고 사람들은 "신림동 강간 미수 사건"이라고 했다. 영상은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자수 의사를 밝힌 A씨는 하루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주거침입' 혐의로 체포했던 경찰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주거침입 강간미수)'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도 같은 혐의로 기소했다.

"만약 피해자가 CCTV 화면 공개하지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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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5월 28일, SNS에 "신림동 강간 미수 영상"이란 제목의 CCTV 화면이 공개돼 충격을 줬다. 영상에는 귀가하는 여성을 쫓아가 집에 침입하려는 한 남성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 비디오머그

하지만 "주거침입죄로만 처벌받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재판부는 1심과 2심 모두 강간미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라고 판단했다. 주거침입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그리고 최근 대법원은 A씨가 제출한 구속취소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가 선고한 형기가 거의 다 채워진 시점이었다. A씨는 오늘(28일) 석방된다.

성범죄 전문 변호사로 잘 알려져 있는 이은의 변호사는 작년 10월 신림동 사건 2심 판결이 나온 후 "실형이 선고되어 다행이다, 그래도 국민 법 감정을 이해하는 판결을 했다"고 평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주거침입과 같이 수반된 범죄행위, 강간과 연관되거나 (강간이) 전제된 범죄행위에 대해서 어떻게 처벌하고 어떻게 체포하고 했는지 봐야 돼요. 그동안 솜방망이 처벌하거나 아예 검찰에서 기소조차 하지 않은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사실, 이번 사건 만약에 피해자가 유튜브 같은 걸 공개하지 않았으면 범인을 열심히 잡지도 않았을 겁니다."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경찰 수사에서부터 재판에 이르기까지 신림동 사건이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는 평가였다. 실제 피해자의 지인이 SNS에 CCTV 영상을 올릴 때까지 당시 경찰은 해당 영상을 확보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림동 사건 2심 재판부는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공분을 일으킨 것은 해당 영상을 시청한 대다수가 피해자의 불안감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꼭 닮은 사건 판결문 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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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0월 22일 오전 8시 40분경 경기도 ○○시에서 주거침입 추행미수 사건이 일어났다. 판결문에 나타난 상황은 "신림동 강간 미수 영상" 사건과 거의 판박이였다. ⓒ 이정환

 
"피고인은 피해자의 집에 이르러, 현관문을 여는 피해자를 뒤쫓아..."

2017년 10월 경기도 ○○시에서 일어난 사건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그러나, "문을 닫으려는 피해자를 밀치고 들어갔다"고 했다. 판결문을 보면 "피해자의 양 손목을 잡고 침대 쪽으로 쓰러뜨리려 하였으나 피해자가 크게 소리치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다"고 했다. '그 뜻'을 재판부는 추행으로 판단했다. 강제추행 미수로 피고인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시에서 일어난 사건은 신림동 사건과 여러모로 흡사했다.
 

- 신림동 사건 당시 추가로 공개된 CCTV 화면에서 A씨가 귀가하는 여성을 쫓아가는 모습은 뚜렷하게 포착됐다. 골목길은 훤했다. 오전 6시 20분께 사건이 일어났다고 했다.

- ○○시 사건도 아침, 오전 8시 40분에 발생했다. 과거에 길을 가던 여성을 강제추행한 적이 있었던 A씨 경우처럼 ○○시 사건 가해자도 동종 전과가 있었다.

- 신림동 사건 재판 과정에서 A씨 측은 "피해자에게 말을 걸기 위해 뒤따라갔다"거나 "같이 술을 마시려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간 의사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 ○○시 사건 가해자측은 "우연히 본 피해자에게 호감이 생겨 말을 걸기 위해 피해자를 따라가다가 우발적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역시, 강간 또는 추행 의사가 없었다는 주장이었다.

소름끼치는 '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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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이후 채널A는 가해자가 귀가하는 여성을 따라가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입수해 보도했다. ⓒ 채널A

다만, 그 1초가... 늦었다. 재판부는 CCTV 영상을 통해 확인한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술했다.

"CCTV 영상에는 피고인이 안에서 문을 닫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피해자를 완력으로 압도하여 강제로 문을 열고 주거에 침입하는 장면이 확인된다. 피해자는 이 사건으로 팔과 오른쪽 허벅지에 멍이 들었는데, 그 위치, 크기 및 형상을 볼 때, 피해자가 멍든 부위에 매우 강한 물리적 충격을 받았음을 알 수 있고, 이는 피고인에게 팔을 붙잡힌 채로 극렬하게 저항하였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뒷받침한다."

1초로 갈리는 찰나의 대응을 오롯이 여성의 몫으로 남겨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이런 공포스러운 순간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광주시갑)이 경찰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주거침입 성범죄는 1,611건이나 발생했다. 주거침입 강제추행이 671건(41.7%)으로 가장 많았고, 주거침입 강간도 459건이나 됐다. 거의 하루에 한 번 꼴로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은의 변호사는 '경찰·검찰·법원이 가해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26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주거침입이 이 정도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가해자들에게 환기를 시켜야 (앞으로 벌어진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라며 "법원은 중범죄로 나아갈 수 있는 범죄에 대해 실형을 선고하고, 이 같은 범죄가 '실형을 살 수 있음'을 경찰과 검찰이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 자세한 인터뷰 기사는 ②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