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잡' 뛰는 탈레반이 세계 최강 미군을 이겼다"

NYT, 27일자 신문 1면 톱과 2개면 할애해 보도
탈레반 월급은 오토바이 기름값 정도, 병사들은 대부분 투잡 뛰어
젊은이들 성전으로 인식, 1년에 병사 4분의1 잃어도 바로 충원
탈레반 "여성은 초등학교만" ...미군은 오는 11월 이전 조기 철군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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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28 08:29 | 수정 2020.05.2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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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받고 있는 탈레반 병사들 /로이터 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가 27일(현지시각) 1면 톱과 신문 2개 지면을 털어 ‘18년의 전쟁 후, 탈레반이 초강대국(미국)에 승리를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미군이 아프간서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 이전 조기 철군을 검토하면서 마침내 탈레반이 승리를 목적에 두게 됐다는 것이다. 도대체 변변한 무기도 없는 탈레반이 어떻게 초강대국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바라볼 수 있게 됐을까.

◇‘투잡’ 뛰며 목숨 건 전쟁하는 탈레반 병사들
NYT에 따르면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해 승리를 목전에 둔 탈레반의 현재 병력은 5만~6만명에 불과하다. 탈레반은 이들 병사들에게 월급을 주지도 않는다. 생필품을 사주고 오토바이 기름값, 용돈을 주는 것 정도가 전부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탈레반 병사들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아프간 동부 라그만주(州) 탈레반 사령관인 뮬라 모하메드 카이스는 NYT 기자를 만날 때 밀가루 투성이의 옷을 입고 나타나면서 “아침내내 밀가루를 빻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방앗간이 그의 첫 번째 직업이고, 탈레반 전사는 그의 부업이었던 것이다.

2001년 미국이 2001년 10월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에 은신처를 제공한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을 응징하기 위해 공격해 들어간 뒤, 탈레반 지도부는 인근 파키스탄에 은신했다. 대신 지역의 지휘관들이 병사를 모집하고, 자체적으로 자급자족을 하는 세포조직으로 진화했다.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강조하지만 탈레반의 주요 자금원은 여전히 마약 재배와 거래 등에서 나온다.

모하메드 카이스 라그만주 탈레반 사령관은 NYT에 “우리는 이 싸움을 (신에 대한) 예배로 본다”며 “(첫째) 형이 죽어도 둘째 형은 신의 뜻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둘째)는 형의 군화를 신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의 전쟁을 성전(聖戰)으로 보고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치고 있다는 것이다. 아프간 최고지도자인 물라 하이바툴라 아쿤자는 자신의 아들에 자살 폭탄 테러를 시켜 지도력을 확보하기도 했다.

탈레반의 정예군 ‘레드 부대’의 한 젊은 사령관은 NYT에 “이슬람 체제가 (아프간에서) 구축될 때까지 우리의 지하드(성전)은 최후의 날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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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아프간 감옥에서 포로 교환을 위해 풀려나는 탈레반 병사들 /EPA 연합뉴스

◇‘어게인 1989’를 노리는 탈레반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인 아프간 전에서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미국과 탈레반은 지난 2월 탈레반이 아프간의 극단주의 무장조직의 테러를 억제하면, 미군과 국제동맹군이 내년 5월 이전에 모두 철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NYT는 미 국방부가 조만간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 이전 미군을 아프간에서 완전 철군하는 방안을 보고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기존 철군 계획에서 더 빨라지는 것이다.

이는 아프간에게 1989년을 떠올리게 한다. 1979년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에 무슬림 반군들은 집요하게 저항해 결국 소련은 1989년 철군한다. 그로부터 3년뒤인 1992년 미국의 지원을 받던 무슬림 반군 무자헤딘이 친소(親蘇) 정권을 무너뜨리고 아프간 이슬람 공화국을 선포한다. 그러나 이후 벌어진 혼란의 와중에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탈레반이 1996년 정권을 잡는데 성공한다.

물론 미군이 철수한다고 해도 탈레반의 아프간 정권 탈환은 쉬운 일이 아니다. 탈레반은 고작 6만의 병사를 갖고 있지만, 미군의 지원을 받는 아프간 정부군의 규모는 17만여명에 달한다. 아프간 정부군도 풍부한 실전 경험으로 탈레반에게 쉽게 밀리지는 않는다. NYT에 따르면 미군은 2013년 이후 약 2만7000개의 폭탄을 투하했고, 매주 수백명의 탈레반 전사들이 죽었다. 지난해의 경우 아프간 정부군은 매달 1000명 이상의 탈레반을 사살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탈레반은 1년만에 병력의 약 4분의1을 잃는 것이다.

그럼에도 탈레반은 풍부한 마약 수입금을 토대로 ‘성전’을 다짐하며 나서는 젊은이들을 끌어들여 지속적인 게릴라전을 벌였다. 오히려 미군 철수가 가시화 탈레반의 선전전은 강화되고 있다. 실제 최근 탈레반 최고지도자는 서명을 내고 아프간 정부에 대한 충성을 철회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면을 약속했다. 지난 10일엔 전직 아프간 정부군 장성인 압둘 잘릴 바크트와르가 탈레반으로 넘어가는 일도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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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사령관이던 남편으로부터 도망치려다 붙잡혀 코와 귀를 잘린 비비 아이샤의 모습. 아프가니스탄 검찰은 아이샤의 코와 귀를 자르는 범행에 가담했던 시아버지 술레이만이 무죄라며 석방하기도 했다. /데일리 메일 웹사이트

◇탈레반은 전혀 변하지 않아
문제는 미군 철수가 가시화하고 있지만 탈레반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탈레반은 집권 당시인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산인 바미안 석불을 우상숭배란 이름으로 파괴했고, 영화나 그림, 예술마저도 금지시켰다. 여성들에게는 의료, 교육, 근로의 권리마저 박탈했었다. NYT는 탈레반은 자신들의 가혹한 근본 이념을 전혀 바꾸지 않았다고 했다.

현재 탈레반의 영향력 아래 있는 라그만주 알린가르의 경우 탈레반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알링가르에 있는 57개 학교 중 17개 학교가 여학교다. 그러나 탈레반은 여학생들에 대한 교육은 6학년이면 끝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음악 수업 같은 경우 ‘상스럽다’는 이유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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