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해진 노동계 '해고금지' 요구…새 국회는 수용하나

한국노총, 근기법 개정 요구…거대여당 설득할듯
민노총 "일정 고용률 유지" 주문…경영계 '냉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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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오른쪽)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2020.5.7/뉴스1

노동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합법 구조조정 요건을 강화하는 '해고금지법' 도입과 대통령 긴급명령 발동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는 경영계가 수용하기 쉽지 않은 사안이지만, 양대노총은 코로나19라는 특수성과 여권이 과반을 거머쥔 국회 출범에 힘입어 가장 주요한 요구로 내세우고 있다.

28일 노동계에 따르면 양대노총은 이달 22일과 26일 열린 코로나19 계기 노사정 실무협의에서 우선적으로 해고금지·총고용유지 방안을 요구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근로기준법에 따른 경영상 해고(구조조정) 요건 강화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재난시기 해고금지를 위한 긴급 재정·경제명령 발동을 주장했다.

양대노총이 서로 각론은 다르나, 입법·행정부에 해고금지를 위한 실질 조치를 촉구한 점은 같다.

오는 30일 개원하는 21대 국회가 이 같은 노동계 요구를 검토할지 관심이 쏠린다. 보통 해고금지처럼 경영계에서 강하게 반대하는 사안은 정치권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국회는 전체 300석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177석, 미래통합당이 103석(미래한국당 합당 가정)으로, 여당이 절반을 훨씬 넘는 의석을 차지한다.

◇어떤 법 개정 바라나…"합법 구조조정 대폭 축소"

한국노총은 근기법 개정 방향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제시한 상태다. 지난 26일 노사정 2차 실무회의에서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한국노총 요구안'을 제출했다.

현행 근기법 제23~24조는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해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 뒤, 긴박한 경영상 필요의 예시로 사업 양도·인수·합병을 들고 있다.

또 경영상 해고가 정당하려면 이와 함께 △해고회피 노력 △해고대상자 선정에 있어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 △노동자 측에 50일 전 통보 △성실한 협의 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한국노총은 "하지만 사직과 희망퇴직에 관해서는 민법이 적용돼 근기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어, 사실상 구조조정이 일터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구조조정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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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회의 모습. (자료사진) 2020.5.20/뉴스1

이에 따라 불법 해고 사유로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구조조정 내지는 업무형태 변경 △신기술 도입이나 업무방식 변경 등 기술적 이유 △업종전환 △일시적 경영악화 △장래 경영위기에 대한 대처 등을 명시하라고 요구했다.

사업 양도·인수·합병을 합법 사유로 규정한 제24조 1항은 삭제할 것을 주문했다.

전반적으로 합법 구조조정 사유의 대폭적인 축소를 요구한 것이다. 특히 신기술 도입과 업종 전환 등 디지털·플랫폼화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에도 해고를 방지토록 한 부분이 눈에 띈다.

아울러 해고회피 노력을 △자산매각 △근로시간단축 △순환휴직 △전환배치 △계열사 전직 등으로 구체화하고, 이를 수행하지 않는 경우 긴박한 경영상 필요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신설하라고 요구했다.

근기법 제24조 4항에 규정된 집단해고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게 할 것을 촉구했다. 회사 합병·분리·사업양도 때에는 고용승계를 의무화하라고도 밝혔다.

◇'대통령 긴급명령' 요구도…"일정 고용률 유지해야"

민주노총은 재난기간에 모든 해고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노사정이 고용률 등 지표를 기초로 '고용총량 유지 목표'를 설정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해고금지를 위한 긴급 재정·경제명령을 발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민주노총이 올 4월 중순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연 브리핑에서 밝힌 내용이기도 하다. 당시 민노총은 "헌법 76조에 의거해 대통령령으로 해고금지와 생존권 보장을 위한 긴급 재정·경제명령을 발동해야 한다"고 했다.

긴급 재정·경제명령이란 국가가 중대한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재정·경제 위기에 처했으나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 대통령이 긴급한 재정·경제 처분에 나서는 것이다. 헌법 제76조 1항이 허용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중대 위기라는 해석이 가능하다면 '국회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인지가 중요해진다. 문제는 21대 국회가 개원한 뒤부터 국회 집회에는 문제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나마 현실성 있는 요구로는 노사정이 일정 고용률을 총고용 유지 목표로 삼는 것인데, 이마저 경영계가 수용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밖에 양대노총은 공통적으로 정부 또는 사용자단체가 기업·회원사에 해고금지 권고 또는 지침을 내릴 것을 바라고 있다. 이러한 자율적인 권고·지침이라면 경영계가 다소 순화한 형태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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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국무회의 주재 모습. (자료사진) 2020.5.26/뉴스1

◇거대 여당이 언급한 '근기법 개정'…노동계 탄력받나

이날 민주당은 21대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숍에서 논의된 '2020년도 국회 운영 전략'을 발표하면서 근기법 개정을 언급했다.

박성준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21대 국회의) 민생 입법과제는 노동존중·복지돌봄·국민안전·주거생활안전 분야로 나뉘는데, 노동존중은 근로기준법이 입법과제"라고 말했다.

근기법 개정은 노사정 합의 추세를 봤을 때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되나, 노동계는 법률 개정 과정에서 구조조정 요건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길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노사는 각자 안을 기초로 협상에 들어갈 예정이나, 합의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날 한국경총 등 사용자단체는 노동시장 유연화, 규제완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건의문을 발표했다.

해고금지와 고용유지는 기업에 큰 부담이며, 임금 대타협 등 상호 양보가 필수라는 게 기본적인 경영계 입장이다. 이들은 노동계와 정반대로, 경직된 구조조정 요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손경식 한국경총 회장은 지난 20일 노사정 대표자 회의에서 "현재 위기는 시장 수요 자체가 사라지면서 영업 적자에 처한 기업들이 막대한 고용유지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임금 대타협으로 고통을 나누고,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세계적 기준에 맞게 우리 제도와 관행도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icef0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