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세워진 ‘추모의 벽’이 묻는다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by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구의역·성수역·강남역…스크린도어에 붙었던 1만여개의 추모 메시지 전수 분석
2016년 5월28일 김군의 사망 이후
매년 떼었다 붙은 포스트잇 메시지
김군 이후에도 안전하지 않은 노동
이제는 해결하자는 슬픈 열망 담겨
2016년 5월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김모군(당시 19세)이 숨졌다.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다 달리던 열차에 치였다. 2013년 성수역, 2015년 강남역에서도 노동자가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숨졌다.
김군의 죽음은 ‘위험의 외주화’를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김군은 서울메트로 외주용역업체 은성PSD의 계약직 직원으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김군 가방에는 작업 공구와 컵라면, 숟가락, 나무젓가락 등이 들어 있었다. 숨진 다음 날은 생일이었다.
“너의 잘못이 아니다” “너는 나다”….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고 위험한 일을 도맡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언제까지 사람보다 돈이 먼저인 세상을 봐야 하냐”고 했다. 1만여장의 추모 포스트잇이 구의역 승강장 스크린도어를 덮었다.
그 뒤로 매년 5월28일에 즈음해 포스트잇이 붙었다. 제주 직업계고 현장실습생 이민호군,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수원 공사현장 노동자 김태규씨, 38명의 이천 물류창고 화재 희생자, 강원 삼척 삼표시멘트 하청업체 노동자….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눌리고, 끼이고, 떨어지고, 불타고, 치여 숨졌다. 해를 거듭할수록 5월 구의역 승강장에 김군과 함께 불리는 노동자 이름이 늘어난다.
28일은 구의역 참사 4주기다. 구의역 9-4 승강장, 성수역 10-3 승강장, 강남역 10-2 승강장엔 어김없이 추모의 벽이 만들어졌다.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구의역 참사 4주기가 던지는 질문이다.
경향신문은 김군 사망 당시부터 올해까지 구의역 등 스크린도어에 붙었던 포스트잇 1만여건을 입수해 분석했다. 포스트잇들은 추모 목소리에 그치지 않았다. 김군 이후에도 안전하지 않은 노동현장, 반복되는 산업재해를 ‘이제는’ 해결해야 한다는 슬픈 열망이 담긴 기록물이다.
참사 당시 포스트잇(1만여건)은 텍스트화된 파일 형태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서 받았다. 노조 측은 “서울시에서 참사 당시 외부 용역에 맡겨 포스트잇 전부를 아카이빙한 자료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1·3주기(151건·201건)는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보관하고 있던 것을 입수했다. 4주기(282건)는 지난 24일 낮 현장을 취재해 기록했다. 2주기(47건)는 분실돼 당시 언론 보도와 사진에서 식별 가능한 것들을 추렸다.
매 주기 포스트잇에 적힌 글들을 워드 클라우드로 만들었다. 많이 언급될수록 글자 크기가 크다. 해마다 메시지들은 비슷한 듯 달랐다. ‘잊지 않겠다’는 추모의 글은 4년 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하라’는 단호한 요구로 변했다.
#너는_나다 #너의_잘못이_아니야
참사 당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나온 메시지다. 사고 직후 서울메트로는 “2인1조 원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며 김군의 책임으로 돌렸다. 시민들은 서울메트로를 규탄하며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글귀를 남겼다. 서울메트로는 3일 만에 “고인의 잘못이 아닌 관리와 시스템의 문제가 주원인”이라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서울시는 지하철 1~4호선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를 맡은 은성PSD의 자회사 전환 계획을 중단하고 직영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군 가방에서 발견된 컵라면은 시민들을 눈물짓게 했다. 남겨진 사람들은 라면조차 먹지 못했던 김군을 ‘나’로 바라봤다. ‘하청 비정규직 청년’ 키워드는 시민들 누구나 위험의 외주화 구조 속에 있는 한 김군과 같은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느끼게 했다. ‘너는 나다’는 구의역 참사를 추모할 때마다, 산재로 숨진 또 다른 김군이 나올 때마다 등장했다.
#기억하겠습니다 #잊지_않겠습니다
1·2주기에는 ‘미안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같은 추모글이 많았다. 1주기 전후로도 ‘죽음의 외주화’는 여전했다. 2016년 9월 경북 경주시에서 열차 선로 작업을 하던 하청노동자 두 명이 KTX 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2017년 11월에는 제주의 한 생수 제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특성화고 학생 이민호군이 압착기기에 눌려 숨졌다.
1주기에는 방송계 노동 착취 현실을 고발하다 세상을 떠난 이한빛 PD의 아버지가 구의역 승강장을 찾았다. 이씨는 “김군! 하늘나라에서 우리 아들 한빛이랑 만나서 행복하게 잘 지내길 바라. 남은 일(못다 이룬 꿈)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이뤄줄 테니 부디 편하게 지내길 바라오. 젊은이가 희망과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를 우리가 만들어줄게”라고 썼다. 이 PD는 생전에 구의역 참사 직후 9-4 승강장에 찾아가 추모글을 남기고 당시 심정을 페이스북 메모로 쓴 바 있다.
초기엔 “잊지 않겠다”는 추모의 글
3주기부터 사회구조 지적 글 늘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단호한 요구
정부는 미적미적…현실은 여전해
#비정규직
3주기부터 김군 추모를 넘어 안전하지 못한 구조를 지적하는 글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2019년 5월28일 전까지 수많은 사업장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2019년 4월에는 김태규씨가 경기 수원의 공장 신축 공사현장 5층에서 작업하다 추락해 숨졌다.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와 이한빛 PD의 가족 등이 모여 산업재해 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을 만들기도 했다.
시민들은 “비정규직, 용역, 하청, 파견 노동자 차별을 없애라”고 했다. “구의역 김군과, 이민호 학생과, 김용균님과, 세상의 모든 비정규직을 위해 잊지 않고 행동하겠습니다” “김군, 김용균씨와 같은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공공부문 안전이 이루어지길. 안전하고 행복한 일터가 되기를” 등 글을 남겼다.
산재 피해자 가족들은 3주기 추모문화제에서 “더 이상 사람이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민호군 아버지는 포스트잇에 “좋은 세상이 오길 바라며. 비정규직 없는 곳에서 항상 웃는 세상을 살길”이라고 적었다. 이한빛 PD 아버지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우리가 만들게”라고 썼다. 김군 동료인 은성PSD 노동자들이 서울교통공사에 직접고용되는 등 변화도 있었다. 동료들이 “비정규직도 정규직으로 전환됐어. 미안하다 김군아! 평생 너에게 빚을 지고 살고자 한다”고 적은 포스트잇이 눈에 띄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_제정하라
4주기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처음 등장했다. 추모를 넘어 산재를 초래한 기업을 처벌해야 한다는 공론이 형성되는 것으로 보인다. 김군이 세상을 떠난 지 4년이 됐지만 책임자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서울동부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유남근)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이모 은성PSD 대표에게 원심과 같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모 전 서울메트로 대표는 대법원에서 벌금 1000만원이 확정됐다. 김군의 죽음에 책임 있는 사람 중 실형을 받은 사람은 없다.
4주기를 앞두고도 대형 산재 사고가 여럿 있었다. 지난달 29일 경기 이천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건설현장에 화재가 일어나 노동자 38명이 숨졌다. 지난 13일엔 삼척시 삼표시멘트 공장에서 하청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지난 21일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노동자가 용접 작업을 하다 아르곤가스에 질식해, 22일에는 광주의 폐목재 처리업체 노동자가 파쇄기에 빨려들어가 사망했다.
산재 피해자 가족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3주년을 앞둔 지난 7일 ‘안전 문제로 죽는 사람이 없는 나라’를 만들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광주 폐기물 사업장, 삼표시멘트 등 중대재해사업장 노동자들은 27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20대 국회에 발의됐지만 상임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았고 사업주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있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했다.
시민들의 외침은 ‘잊지 않겠다’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으로 날카롭게 변했다. 현실은 그대로다. 구의역 승강장 포스트잇은 5년째 ‘슬픈 열망’으로 남아 있다. 정부의 대답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