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귀동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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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냥 중에 제일 동냥이 귀동냥이야. 옛사람들은 책도 드물고 인터넷이 아예 없던 시절, 귀동냥으로 공부들을 했어. 당신이 시방 하는 말도 귀동냥으로 배운 거고, 나도 귀동냥으로 얻어들은 걸로 보통 ‘썰’을 풀고 댕긴다네. 말을 재밌게 하려면 귀동냥을 잘해야 한다. 가끔 어디라도 배움이 있으면 앉아 있곤 하는데, 조는 경우도 더러 있다. 재미가 없으면 요샌 자동으로 눈이 감긴다.

목사가 설교를 하는데 한 청년이 꾸벅꾸벅 졸더란다. 곁에 있던 할머니에게 깨워달라고 부탁을 했다. 할머니 왈 “재우기는 자기가 재워놓고 날더러 깨우라고 그라시요잉.” 투덜댔다던가. 청중이 졸지 않도록 말을 재미나게 할 줄 알아야 한다. 시골에선 사투리를 보통 듣고 살아가는데, 전라도 오지 섬보다 광주 시민들이 훨씬 억양이 세고 진한 사투리를 구사한다. 젊은이들이 말줄임표 신조어까지 동원하여 사투리를 사용하면 ‘외계어’처럼 느껴진다. 메모장에 적어두고 애들에게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 산골로 돌아와 전화상으로 실습도 해본다.

“휘적휘적 사라지던 뒷모습만큼이나 앞모습도 보기 꽤 괜찮았고 잘생긴 얼굴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사투리가 더 매력이었어. 나는 그때 이미 사투리가 오히려 어색하게 들렸는데, 근이는 전혀 고치지 않았어. 그 후의 직업 선택을 생각하면 근이야말로 사투리를 일찍 고쳤어야 했는데 말이지. 근이는 뭘 해도 자연스러운 사람이었어.” 정세랑의 소설 <효진>에 나오는 풍경이다. 근이처럼 말투를 고치지 못하고 나도 살아간다. 그래도 재밌는 말, 살아 숨 쉬는 말은 가슴을 트이게 만든다. 귀에 시멘트를 바르고, 혀가 보도블록처럼 굳어 도통 소통하지 않으면 암만 좋은 뜻이라도 다음 세대로까지 귀한 뜻이 전달되지 못한다. 점잖은 말, 에둘러 하는 말, 기름칠한 말잔치. 아니면 악다구니를 쓰고 버럭버럭 화내는 말들. 따지고 캐고 쪼고 쥐 잡듯 쫓으며 괴롭히는 말잔치. 자연스럽게 삶과 생각을 풀어내는 친구랑 밤을 새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귀동냥도 맘껏 하고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