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최서면의 근기(根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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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민이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1969년 겨울 어느날, 한국연구원 최서면 원장은 도쿄 고서점거리 진보초의 한 서점에서 보내준 ‘도서목록’에 눈이 꽂혔다. <안응칠 역사>를 확인한 그는 소장자(스에마쓰 교수)한테로 달려갔다. 그리고 한국에서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세우는데 정작 안 의사 전기가 없으니 양보해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최 원장의 열정에 감복한 소장자는 결국 책을 내줬다. 구전으로만 떠돌던 안중근 옥중 자서전의 실체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바로 뒤 안중근숭모회 이사장인 노산 이은상은 <안응칠 역사>를 국내에 번역 소개했다. 안 의사 탄생 100년을 맞은 1979년에는 <안중근의사 자서전>을 펴냈다. 안중근 연구의 시작이었다. 최서면 원장 역시 연구자로 나섰다. 일본 ‘외교시보’에 <안응칠 역사> 발굴기를 소개한 최 원장은 이내 ‘안중근연구회’를 출범시켰다. 매일같이 외무성 외교사료관으로 출근해 자료를 뒤지고 또 뒤졌다. 일제 법원의 심문기록, ‘안응칠 소회’ ‘동양평화론’ 등 안 의사 관련 기록을 찾아낸 것은 이런 노력의 소산이다. 또 일본 내의 안 의사 유묵을 찾아 안중근기념관에 기증했다.

안중근에서 시작된 관심은 한·일관계 전반으로 확대됐다. 1978년 임진왜란 의병장 정문부의 활약상을 기록한 ‘북관대첩비’가 야스쿠니신사 숲에 방치돼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 비는 2005년 한국으로 반환돼 이듬해 북한에 전달됐다. 1994년 발굴한 이봉창 옥중수기와 재판기록은 그간 알려지지 않은 이봉창 의사의 삶과 항일투쟁을 재평가하는 결정적 자료가 됐다. 독도 영유권을 입증하는 지도·자료 20만건도 발굴·소개했다.

지난 26일 타계한 최서면 원장은 평생을 일본 내 한국 근현대 자료 발굴에 매진했다. ‘서면(書勉)’이란 이름대로 일본의 도서관·사료관을 개인 서재처럼 드나들었다. 수집한 안중근 자료 1000여점은 연세대에 기증했다. 발굴 자료는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 소장 한국관계사료목록 1875∼1945>(국사편찬위원회), <안중근-아주제일의협>(국가보훈처) 등으로 출간됐다. 그러나 학계 연구는 최 원장의 근기에 미치지 못한다. 방대한 발굴 자료 가운데 번역된 것은 거의 없다. 내로라하는 안중근·독도 연구서도 나오지 않았다. 학계의 분발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