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보이지 않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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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내가 지나는 출근길 옆의 카페는 꽤 이른 시각부터 문을 연다. 카페 바깥 테이블에는 거의 매일 그 시간에 앉아 책을 읽는 손님이 있는데, 나이가 지긋한 서양 노인인지라 매번 눈길이 가곤 했다. 쌀쌀하거나 무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눈비만 내리지 않으면 늘 그를 볼 수 있었다. 은퇴한 교수일까? 사제? 아니면 선교사? 괜한 호기심으로 한번은 그가 읽는 두꺼운 책의 제목을 눈여겨보고 검색을 한 적도 있다. 지도로 보는 서양사에 관한 책이었는데, 이미 번역 출간된 책이라 출판인으로서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노인이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아 슬며시 걱정이 되었다. 아픈 걸까? 혹시 본국으로 돌아가셨나? 먼 이국땅에서 노년을 보내던 그는 누구이며,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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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회사 근처에는 내가 이틀에 한번쯤은 꼭 들르는 편의점이 있다. 40대 초반의 여성이 점원으로 일하는데, 음료수와 담배 등속을 사면서 짧은 대화를 나누곤 한다. 한번은 근처의 다른 편의점에 들렀다가 또 그를 마주쳤다. “여기서도 일하세요?” 하는 물음에 그는 웃으면서 답했다. “저쪽 편의점은 우리 언니예요. 둘이 비슷하게 생겨서 사람들이 자주 물어요.” 며칠 후 그 편의점에서 “저쪽 편의점 언니는 잘 지내죠?” 하고 인사 삼아 물었더니, 그가 막 웃으며 답하는 것이었다. “제가 언니예요. 둘이 바꿔서 일할 때도 많아요.” 뭐가 뭔지 어리둥절해하며 돌아서는 내 뒤에 “하하하”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침 출근길에는 매일 마주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아파트 단지의 입구 동에서 일하는 경비원인데, 볼 때마다 늘 내게 인사를 건넨다. 멀리 떨어진 동이라 얼굴을 잘 기억하지도 못할 텐데, 청소를 하다가도 고개를 들어 “안녕하세요!” 하고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한다. 우리 동의 경비원도 잘 모르는데, 그분의 이름이며 나이를 알 턱이 없다. 엉겁결에 꾸벅 답례를 하고 지나치지만 아침마다 기분이 활짝 갠다.

고 노회찬 의원이 생전에 남긴 “6411번 버스를 아시나요?”라는 연설에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는 새벽 4시에 출발하는 이 버스의 진풍경을 소개하면서, 그 버스에는 매일 5시 반까지 강남에 가서 빌딩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탄다고 했다. 서로 누군지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그들은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으로 불릴 뿐 투명인간과도 같다고 했다. 누가 그 빌딩을 청소하고 유지하는지 아무도 의식하지 않으며, 존재하되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되는 사람들.

얼마 전 있었던 서울 강북구 아파트 경비원의 죽음을 아직은 모두 기억할 것이다. 스스로 경비원으로 경험한 일을 <임계장 이야기>라는 책으로 써낸 조정진씨는 TV 인터뷰에서 이 사건을 ‘갑질’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갑질’이라는 말은 결국 사건의 원인을, 한 아파트 입주자의 개인적이자 인격적인 일탈로 돌리는 데 그친다는 얘기였다. 경비원의 죽음 뒤에는 그런 일탈이 가능하도록 방조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용역업체, 입주자대표회의가 있고, 무엇보다 분리수거가 엉망이고 화단이 지저분하다고 쉽게 짜증을 토하는 나 같은 입주자들이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새삼 분노를 표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가 상실하고 있는 어떤 ‘감각’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이 돌아가기 위해 인간은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까지 필요한 법인데, 우리는 이 엄연한 사실을 거의 잊고 산다.

당신은 주변의 누구를 기억하는가? 나의 평온하고 편리하고 깨끗한 일상 뒤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런 감각을 이미 잃은 게 아닌지, 나는 그게 두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