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사노위 ‘플랫폼 노동’ 첫 합의, 갈 길은 아직 멀다
스마트폰 앱이나 웹으로 지시·통제를 받아 일하는 것을 ‘플랫폼노동’이라고 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퀵서비스나 택배, 대리운전, 가사도우미·간병, 웹소설·웹툰, 소프트웨어(SW) 개발, 이사, 통·번역, 인공지능(AI) 학습데이터 입력, 포털 속 유해물을 걸러내는 일들이 모두 이 범주에 들어간다. 개인사업자로 플랫폼 업체와 계약하는 이들에겐 일터와 시급, 정해진 노동시간이 없다. 4대보험과 연차·유급휴가·퇴직금도 따로 없다. 하루하루 일감 단위로 매겨지는 월수입은 대개 최저임금 언저리에 있거나 약간 웃돈다. 사무실·공장에서 근로계약서를 쓰고 일하는 전통적 노동자 지위나 근로기준법 밖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이런 플랫폼노동을 보호하기 위한 첫 사회적 합의가 나왔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 위원회’가 27일 정보기술(IT)·SW 분야의 플랫폼경제 활성화와 종사자 보호를 위한 합의문을 내놓았다. 노사정이 최대 30만명으로 추산되는 IT·SW 분야 프리랜서들에게 적용할 자율규범을 만든 것이다. 여기엔 표준계약서 작성과 대금 체불 방지, 성별·나이·학력의 차별 방지, ‘벌점’ 제도의 공정한 운영, 기업 수수료의 투명한 공개 방침이 담겼다. 프리랜서들이 플랫폼 업체의 일방적 처우나 갑질에 시달리고, 일상적인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표출했던 사안들이다. 대표적인 국내 IT 플랫폼 업체 3곳(이랜서·위시켓·프리모아)은 이 규범을 지키겠다고 공개 서약했다. 이 자리에서 노사정은 오는 10월까지 최대 10만명으로 추산되는 배달노동자의 고용보험·산재보험 가입 문제를 논의할 별도의 협의체도 출범시켰다. 자율규범과 협의체 단계지만, 플랫폼노동의 보호장치를 만드는 첫발을 뗀 셈이다.
‘디지털 특고’로도 불리는 플랫폼노동 종사자는 일과 쉼의 경계가 없고 사회안전망도 헐거운 저임금 노동의 축이 됐다. 정부 추계 55만명에 달하지만, 아직 공식 통계조차 없이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플랫폼노동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직종이 더 분화됐고, 디지털·비대면 중심의 ‘한국판 뉴딜’까지 본격화하면 그 비중이 더 커질 수 있다. 정부는 플랫폼노동의 실태조사부터 서둘러야 한다. 휴직·실업자의 교육훈련 체계를 재정비하고, 고용보험망 확충도 속도를 내야 한다. 자율규범으로 시작된 노사정 합의는 희망의 단초만 놓았을 뿐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