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33] 로보스 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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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28 03:12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간접적으로 호화 열차 문화를 소개했다. 기차를 만들고 산업혁명을 시작하며 전 세계에 제국을 건설했던 영국은 19세기 말 탐험 시대를 열었다.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에도 호화 열차가 도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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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100여 년이 지나, 과거의 영화를 재현한 기차가 부활했다. 사막과 평원, 정글과 초원을 가로지르는 문명의 오브제. 바로 '아프리카의 자부심'이라고 하는 로보스 레일(Rovos Rail)이다. 창업자 로언 보스는 어느 날 경매에 참가하여 가족 여행을 위한 빈티지 증기기관차 네 량을 구입하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던 취향은 곧 비즈니스가 되었다. 로보스 레일은 1989년 4월 남아공에서 첫 운행을 했고 현재 아프리카 곳곳을 향한다. 로언은 종종 빈티지 기차를 구입하여 자기 공방에서 리모델링한다. 오래된 식당이 문을 닫으면 그 인테리어를 사서 식당차를 꾸미기도 한다. 공방은 실업률이 높은 남아공에서 일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목공 기술을 하나씩 가르치면서 운영한다. 그렇게 만든 고급 공예품 같은 기차 내부는 며칠간의 여행 경험을 특별하게 해 준다〈사진〉.

승무원들의 접객은 전문적이다. 웃음을 잃지 않고 작은 서비스도 놓치는 부분이 없다. 식사 때마다 제공하는 남아공 와인과 음식의 마리아주(궁합)도 기막히다. 목적지보다는 여정 자체가 중요하므로 단지 기차를 타려고 탑승한 승객도 많다. 승객 중에는 스위스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부부가 있었다. 24시간 고객을 신경 쓰고 환대해야 하는 로보스의 경영을 배우려고 탑승했다고 한다. 노르웨이에서 레스토랑을 여럿 운영하는 신사도 있다. 식당 칸과 라운지 운영에 감탄한다. 기차는 사각형으로 길지만 그 안의 서비스는 둥글게 균형 잡혀 있다. 로언은 지금도 기차가 출발하기 전 직접 승객들을 만난다. 로보스의 창업 스토리를 이야기하고 기차 만드는 현장도 견학시켜 준다. 우아하고 특별한 경험을 한 승객들은 이후에도 종종 이 기차 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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