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현대차 누른 카카오 시가총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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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28 03:18 2015년 7월 뉴욕 증시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다. 설립 21년 된 온라인 유통업체 아마존이 유통업계 거인 월마트의 시가총액을 앞지른 것이었다. 당시 아마존 매출은 월마트의 5분의 1도 안 됐다. 직원 수도 15분의 1에 불과했다. 다만 월마트 매출이 6년간 20% 늘어나는 동안 아마존은 4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해 2분기에 아마존 매출이 예상보다 더 커졌고 처음으로 흑자 전환하는 걸 확인하고 증시 투자자들이 아마존에 본격 베팅했다. 지금 아마존 매출은 월마트의 절반 조금 넘는데 주당 가격은 20배, 시가총액은 3.5배다.

▶코로나가 확산하자 올해 캐나다 증시에서 창업 14년밖에 안 된 젊은 IT기업 쇼피파이가 일약 시가총액 2위로 부상했다. 독일 태생의 고교 중퇴생 프로그래머가 캐나다로 스노보드 타러 갔다가 사랑에 빠져 정착한 뒤 스물여섯 나이에 창업한 회사다. 스노보드 장비를 온라인으로 판매하려다 아예 영세 자영업자들을 위한 온라인 쇼핑몰 구축을 지원하는 IT 회사가 됐다. 5년 전 미국 증시에 상장할 당시만 해도 주당 27달러이던 주가가 현재 767달러까지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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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코스피의 시가총액 판도는 외국인 투자자와 개인 투자자가 바꾼다. 5월 들어 외국인 투자자가 가장 많이 사들인 다섯 종목이 카카오, 엔씨소프트,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SDI, LG 생활건강이다. 그중 네 개가 시가총액 10위권에 들어있다. 코로나 이후 미국처럼 IT 기업이 성장을 견인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미국 증시에서는 이런 전조가 2011년 8월에 있었다. 당시 애플이 석유 회사 엑손모빌을 누르고 처음 시가총액 1위에 잠시 올랐다. 한동안 두 회사 시가총액이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애플이 선두를 굳혔다. 이제 미국 경제 성장 엔진은 굴뚝 산업이 아니라 테크 산업이다.

▶작년 매출이 3조원에 불과한 카카오가 매출 105조원의 현대차를 누르고 시가총액 9위에 올랐다. 26일 기준 코스피 시가총액 10위 기업 가운데 아홉 개가 반도체, 바이오, 전기차 배터리, 인터넷 기업이다. 현대차, 포스코 같은 굴뚝 기업들은 10위권에서 밀려났다. 카카오 대주주 김범수의 보유 주식가액이 현대차 정몽구 회장 부자보다 많아졌다.

▶꿈을 먹고 사는 증시는 미래의 기대를 주가에 선(先)반영한다. 실적으로 뒷받침되면 주가가 계속 오르지만 아니면 거품은 금세 꺼진다. 코스피 시가총액 순위 변화가 한국 경제의 새 성장 엔진 등장을 알리는 전조였으면 한다. 다만, 혁신 없이는 모두 일장춘몽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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