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世說新語] [573] 우수운산 (雨收雲散)
by 조선일보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20.05.28 03:16
송나라 육유(陸游)가 성도(成都)의 늦봄에 명승 마하지(摩訶池)를 찾았다. 따스한 볕에 꽃들이 활짝 피었다. 풍악이 울리고, 귀족들의 행차로 경내가 떠들썩했다. 육유는 '수룡음(水龍吟)'에서 이런 경물과 풍광을 묘사한 뒤 "슬프다 좋은 시절 문득 바뀌면, 남몰래 넋은 녹아, 비 걷히고 구름은 흩어지겠지(惆悵年華暗換, 黯銷魂, 雨收雲散)"라고 썼다. 청춘의 꿈은 가뭇없고, 이 풍광도 곧 자취 없이 스러질 것이다.
이 시 이후로 '우수운산(雨收雲山)'은 분명히 존재하던 어떤 것이 자취도 없이 사라진 상황을 뜻하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원나라 무명씨의 '벽도화(碧桃花)'에도 이런 시가 나온다. "우렛소리 크게 울려 산천을 진동하니, 이때 누가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비가 개고 구름이 흩어지길 기다려선, 흉도(凶徒)와 악당들은 또 앞서와 똑같으리(雷聲響亮振山川, 此際何人不怕天? 剛待雨收雲散後, 凶徒惡黨又依然)." 악당들이 천둥 번개가 꽝꽝 칠 때는 하늘이 두려워 쩔쩔매다가, 잠시 후 비가 걷히고 구름이 흩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말짱하게 온갖 못된 짓을 계속할 것이라는 뜻이다.
조선 후기 원경하(元景夏)는 '영성월(詠星月)'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하늘에 뜬 밝은 별 반짝반짝 빛나다가, 흐린 구름 문득 덮자 어두워 별도 없네. 나그네 방 삼경에 빗기운 캄캄해서, 숲 끝에 보이느니 반딧불이 몇 개뿐. 비 걷히고 구름 흩어지자 별이 다시 나와서는, 반디 불빛 스러지고 산 달만 환하더라(明星出天光炯炯, 陰雲忽蔽暗無星. 客堂三更雨冥冥, 林梢唯看數點螢. 雨收雲散星復出, 螢光自滅山月明)." 먹구름이 몰려와 하늘의 별을 지웠다. 어두운 숲에는 반딧불이 몇 마리만 보인다. 이윽고 비가 개고 구름이 흩어지자 가렸던 달이 제 빛을 찾아, 천지는 광명한 본래 모습을 문득 되찾았다.
이승보(李承輔)도 '야화(夜話)'의 끝 두 구절에서 "세상일 원래부터 헛된 변화 많으니, 비 개고 구름 걷히면 문득 자취 없으리(世事元來多幻化, 雨收雲散却無痕)"라 했다. 비가 개고 구름이 흩어지면 가렸던 달빛이 다시 환해질까? 아니면 못된 무리가 면죄부를 받고서 다시 횡행하는 세상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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