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저작권 위반" 태백 소녀상 폐기 요구한 정의연 이사
"저작권법 위반했으니 폐기하라"
정의연 이사로 있는 김운성 작가, 태백 소녀상 만든 작가에게 연락
광주·나주 작가들도 문자 받아
金작가 부부, 평소 언론 인터뷰선 "다른 소녀상들 놀랍고 감사하다"
최소 95개 제작, 매출 31억 추정
by 조선일보 조유미 기자 이기우 기자 허유진 기자입력 2020.05.28 01:30 | 수정 2020.05.28 10:28 강원도 태백시 태백문화예술회관 시계탑 앞 보행로에는 가로·세로·높이 각 3m짜리 파란 천막이 서 있다.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지만, 천막 안에는 위안부 피해자를 형상화한 '평화의 소녀상(像)'(이하 소녀상)이 있다. 지난 22일까지는 천막 없이 넝마에 둘둘 말리고 발 부위는 목장갑이 끼워져 있었는데, "흉하다"는 지적에 태백시가 천막을 쳤다. 이 소녀상은 원래 지난 3월 제막식과 함께 공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한 차례 밀렸고, 최근 다시 무기한 연기됐다. 소녀상을 만든 장윤실 작가는 "녹여 없애야 할 처지"라고 했다. 무슨 사연일까.
태백 지역 시민 단체들로 구성된 '태백 소녀상추진위원회'(태백 추진위)는 작년 9월, 시내에 소녀상을 세우기로 하고 지역에 거주하는 장 작가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추진위 관계자는 "소녀상 대표 작가 김운성 부부도 한때 고려했지만, 지역 작가에게 맡기는 게 의미도 더 있고, 제작비도 저렴했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2011년 최초로 소녀상을 세운 김운성·김서경 작가 부부는 소녀상 제작비로 3300만원을 받는다. 태백 장 작가는 2600만원에 제작을 맡았다.
작품은 2월 완성됐다.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연기된 제막식(5월 23일) 닷새 전이던 이달 18일, 장 작가에게 문자 메시지 한 통이 왔다. 김운성·김서경 작가 부부 측이 보낸 문자였다. 문자에는 태백 소녀상이 '저작권법 위반'이란 내용이 담겼다. 실제로 태백 소녀상과 김 작가 부부의 소녀상은 헤어스타일과 앉은 모습, 무릎에 얹은 손 등 전반적인 분위기가 비슷하다. 김 작가 부부는 문자 메시지에 이어 "귀하의(장 작가) 행위는 범죄행위"라는 내용증명을 보냈고, 전화로 태백 소녀상 폐기 처분을 요구했다. 장 작가는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이런 일은 그간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국 각지에서 발생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 서구 소녀상을 만든 고근호 작가도 2017년 8월 제막식을 앞두고 김 작가로부터 '저작권 침해'라는 항의 전화를 받았다. 고 작가는 "광주 남구, 동구, 북구, 광산구 등 소녀상을 만든 작가 5명이 항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고 작가는 "'저고리와 단발머리는 그 시대의 전형적 소녀상 아니냐'라고 반박하자 더는 연락하지 않더라"고 했다. 전남 나주 소녀상을 만든 임정임 작가도 2016년 김 작가 항의를 받은 뒤 기존 소녀상 어깨의 비둘기상을 '날개'로, 헤어스타일도 단발머리 대신 댕기 머리로 각각 바꿨다.
김 작가 부부의 이러한 행태는 그간 이들 부부가 언론 인터뷰 등에서 밝힌 공식 입장과 배치된다. 김 작가 부부는 2017년 3월 언론 인터뷰에서 다른 소녀상이 이곳저곳 건립되는 것을 두고 "놀랍고 감사하다"고 말했었다. 작가들은 "소녀상의 의미와 김 작가의 과거 인터뷰를 감안하면, 항의 전화는 의외였다"고 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저작권 교육을 담당하는 민경재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저작권 주장은 권리이자 자유지만, 소녀상처럼 상징성을 가진 창작물의 저작권을 주장하는 경우는 사실 흔치 않다"고 했다. 김 작가 부부가 그간 소녀상으로 올린 매출은 31억여원으로 추산된다. 정의연 홈페이지에 따르면, 국내외에 설치된 소녀상 140여개 가운데 최소 95개가 김 작가 부부 작품이었다.
더욱이 김운성 작가는 2016년 이래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로 등재돼 있다. 이렇게 돈을 번 김 작가 부부는 정의연에 기부했다. 공시에 따르면, 김 작가 부부는 2018년엔 6870만원의 금품을 정의연에 출연했다. 다른 해에는 후원 기록이 없었다.
김 작가 측은 본지의 원가 공개 요청을 거부했다. 전문가들 추산 원가는 '1000만~2000만원'이었다. 자체 소녀상을 제작해본 조각가 A씨는 "재료 값 1000만원, 기단 등이 700만원 정도일 것"이라고 했다. 조각가 B씨는 "통주물 방식은 아닌 듯해, 2000만원 정도"라고 했다. 수도권 주물업자 C씨는 "주물 공장 측과 대량주문에 따른 단가 인하 협상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개당 2000만원으로 계산했을 때 부부의 순이익은 약 10억원이다. 김운성 작가는 본지의 입장 표명 요청에 "응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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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브리핑] 태백소녀상이 울고 있습니다 전현석 기자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제휴안내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