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상임위원장 독차지하겠다는 민주당…원칙? 협상용?
21대 국회, 초반 기선제압을 위한 '샅바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여야 원내대표가 원 구성 협상을 본격 시작한 지 하루 만입니다.
국회 상임위원장 18자리를 놓고, 여당인 민주당이 11개, 야당인 통합당이 7개를 나눠 맡기로 '잠정 합의'됐다는 게 오늘(27일) 이른 아침까지 국회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오늘 "원칙에 따라 모든 상임위를 다수당, 여당이 가져와야 한다"고 으름장을 놨고, 미래통합당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국회를 없애라고 하라"고 응수했습니다.
21대 국회 개원까지는 이제 사흘 남았습니다.
■"'절대 과반' 정당이 상임위원장 전부 가져야"
샅바를 먼저 꽉 움켜진 건 민주당입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오늘(27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21대 국회는 잘못된 관행으로 얼룩진, 근본적으로 잘못돼있는 20대 국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면서 "21대 국회도 20대 국회처럼 만들려는 야당의 주장과 논리, 행태는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잘못된 관행', 국회 법사위와 예결위는 관례적으로 야당 몫이니 이번에도 통합당이 가져야 한다는 야당 주장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이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윤호중 사무총장,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이 발언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국회 18개 상임위의 위원장을 '모두' 민주당이 차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윤 사무총장은 "현재 177석, 선거 당시로 보면 180석을 만들어준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과거에는 과반정당이 없거나, 있더라도 과반을 겨우 넘겼기 때문에 상임위를 나눠가졌던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민주당이 절대적 또는 안정적 다수를 확보한 것은 국회를 책임지고 운영하라는 국민의 뜻"이라며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를 가지고 야당과 협상할 일이 아니다. '절대 과반' 정당인 민주당이 상임위원장 전석을 갖고 책임 있게 운영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맞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민주화가 이뤄진 13대 국회 이후 상임위를 여야 교섭단체가 의석수 비율에 따라 배분했던 것은, '절대 과반'을 차지한 정당이 없는 상황에서 원활한 국회 운영을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즉 과거에는 다수당이 있더라도, 대부분 상임위의 위원 비율이 여야 동수였기 때문에 다수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면 국회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어 배분했던 것뿐이었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민주당이 177석, 모든 상임위에서 과반을 차지할 수밖에 없으니 상임위원장도 전부 가져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원칙' 관철 의지? 협상용 발언?
현행법은 상임위원장을 '본회의에서 선거로 정한다'(국회법 41조)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21대 국회 '절대 과반'인 민주당이 상임위원장을 모두 차지하는 게 '원칙'이라고 윤 사무총장이 말하는 근거입니다.
하지만, '원칙'뿐 아니라 '관례'도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 국회입니다. '관례'를 힘으로 깰 때는 곧잘 파행을 맞는 국회. 윤 사무총장의 발언은 '원칙'을 관철하겠다는 당 지도부의 입장 표명일까, 협상에서 기선제압을 위한 것일까?
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일단 '협상용'이라는 쪽에 무게를 실었습니다. '샅바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윤 사무총장이 세게 이야기한 것이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에게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주 원내대표가 만족스럽지 못한 협상 결과를 내더라도, 내부에 설명할 '명분'이 생긴 것 아니냐는 취지입니다.
민주당 지도부 가운데 한 의원은 "전날 통합당 측이 상임위를 11(민주당)대 7(통합당)로 배분하는 것이 확정된 것처럼 이야기한 데 따른 것"이라고 했습니다. "의석비율에 따라 배분하는 게 관례이긴 하지만 확정된 것이 없는데, 프레임이 이상하게 짜여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통합당이 계속 원 구성 협상을 지난하게 끌고 갈 경우, 민주당이 18개 상임위를 모두 가져가는 '결심'을 할 가능성도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차라리 국회를 없애지"
발언의 진의가 무엇이든, 민주당 지도부 가운데 한 사람이 "상임위원장 독식"을 주장한 상황.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차라리 국회를 없애라"고 맞받았습니다.
주 원내대표는 "1990년 3당 합당으로 여당이 250석일 때도 야당이 상임위원장을 가져갔다"면서 "의석비율로 (상임위원장을) 나누는 것은 지금 여당이 야당일 때 강력히 주장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국회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게 주 임무인데, 똘똘 뭉쳐서 하는 국회는 없는 상태"라면서 "'내로남불'은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국회는 입법뿐 아니라 행정부와 사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게 주된 역할인데, 정부 정책과 궤를 같이하는 여당이 상임위원장을 전부 차지하면 국회의 존재 의미가 무엇이냐는 얘기입니다. 과거 민주당이 소수 정당이던 시절에는 상임위원장 배분을 주장하고선, 이제 처지가 바뀌었다고 상임위원장 석권을 주장하면 안 된다는 얘기도 덧붙인 것입니다.
여야 협상의 실무자인 김성원 원내수석부대표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상임위원장 11대 7배분은 의석수 별로 국회가 해왔던 것이고, 더 욕심낸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과반정당이 위원장 석권"…12년 전의 '데자뷔'
여야가 이 같은 논리로 벌이는 '샅바 싸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12년 전, 18대 국회 원 구성 협상 때도 같은 기싸움이 벌어졌습니다.
18대 국회에서 다수당이던 한나라당의 주호영 원내수석부대표는 원 구성 협상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의석이 180석이 넘는 한나라당이 국회 운영을 책임져야 한다. 모든 상임위원장을 한나라당이 맡아야 한다".
원활한 국회운영을 위해 법사위도 한나라당이 맡아야 한다면서, 민주당이 맡으려면 법사위로 이송된 법안은 1개월 안에 전체회의에 상정되고, 3개월 내에 심의를 못 마치면 자동으로 본회의에 상정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당시 민주당 서갑원 원내수석부대표는 "국회의원의 고유 권한인 입법권을 부당하게 제한하고 침해하는 것"이라고 맞섰습니다. 또 "한나라당이 다수당으로 '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겠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만 포기하면 국회는 원활하게 운영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나라당이 원 구성 협상 지연을 이유로 단독 개원을 추진하자, "야당에 대한 선전 포고"라며 "의회민주주의를 포기하고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여 일당 독재를 하겠다는 발상"이라는 논평도 민주당에서 나왔습니다. 현재 민주당 지도부, 정책위의장인 조정식 당시 원내대변인의 논평입니다.
이렇게 '데자뷔'와 같은 '샅바 싸움'을 벌였던 18대 국회는 원 구성에 88일이 걸렸습니다.
여야 원내대표는 전날 원 구성 법정시한 내에 협상을 마치도록 노력하겠다는데 합의했습니다. 원 구성 법정시한은 다음 달 8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