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우리의 바다생물](1)백령도 주민이 만든 ‘인공쉼터’…생존 위협 점박이물범들 ‘소중한 안식처’로
by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서해 점박이물범
호흡 등 위해 물 밖에 나와 휴식
환경단체 등 합류 새 쉼터 만들어
개체 수 증가로 연결되리라 기대
“지역의 해양보호생물관리 모범”
한반도를 둘러싼 삼면의 바다는 등록 해양생물만 따져봐도 1만3356종이 모여 사는 풍요로운 곳이다. 하지만 상당수 해양생물은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등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당국은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점박이물범·바다사자(독도강치)·남방큰돌고래 등 80종(포유류 16종, 무척추동물 34종, 조류 14종, 어류 5종 등)의 생물을 해양보호생물로 지정, 보호·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해양생물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펼쳐가고 있는 다양한 노력을 매달 한 차례 5회에 걸쳐 소개한다.
■국경 없는 점박이물범들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사태로 사람들이 넘기 어려운 국경을 해양동물들은 자유롭게 오간다. 점박이물범도 그중 하나다. 몸길이 1.4~1.7m로 물범치고는 덩치가 작고, 개체마다 사람의 지문처럼 점박이 무늬가 다른 이 포유류는 중국 랴오둥만의 유빙(遊氷) 위에서 새끼를 낳아 기르며 겨울을 보낸다. 3월이 되면 300여마리가 백령도 일대로 찾아와 늦가을인 11월까지 서식하며 오징어와 조개 등을 먹는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서해 전역에 약 8000마리가 서식했던 점박이물범은 2000년대 들어 개체수가 1200여마리로 크게 줄어든 상태다. 지구온난화로 유빙이 녹아내리면서 겨울나기가 쉽지 않아진 데다 환경오염으로 서식지도 크게 감소했다. 인간의 탐욕도 이들에게는 타격이었다. 부드러운 털로 뒤덮인 가죽과 고기를 노린 남획에 시달렸다. 한국은 1982년 점박이물범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데 이어 2007년에는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자리다툼 없는 휴식
농촌에서 봄이면 제비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처럼 서해 최북단 백령도 주민들은 점박이물범들을 기다린다. 애정이 각별하다. 2013년 백령도 주민 20여명이 모여 ‘점박이물범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점사모)을 창립한 뒤 인천녹색연합 등과 협력해 점박이물범 모니터링, 서식지 주변 해안 정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생태해설 등 보호 활동을 펼쳐왔다. 점박이물범이 2014년 인천 아시아게임 마스코트가 된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다. 주민들은 보호를 넘어 적극적인 생태환경 개선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2016년 8월 점박이물범을 위한 쉼터 만들어주기 작전을 시작했다. 점박이물범은 체온조절, 호흡 등을 위해 주기적으로 물 밖으로 나와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백령도 인근의 주요 휴식장소인 물범바위가 너무 좁아 자리경쟁이 극심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해양수산부, 해양환경공단, 환경단체, 지자체, 해병대 등 여러 기관과 힘을 모아 2018년 11월 멋진 인공쉼터를 완성했다. 물범바위 근처 하늬바다에 길이 20m, 폭 17.5m짜리 섬 모양으로 마루 높이를 네 단으로 달리한 구조물을 조성한 것이다.
쉼터는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조성 이듬해인 2019년 중국에서 온 점박이물범들이 인공쉼터 위에서 휴식하고 있는 모습이 잇따라 확인됐다.
특히 인공쉼터는 기존 쉼터인 물범바위의 자리경쟁에서 밀려나거나 부상을 입은 점박이물범들이 주로 활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간이 선물한 쉼터가 생존에 불리한 개체들에게 소중한 안식처가 되고 있는 셈이다. 주민들은 이 쉼터가 백령도를 찾는 점박이물범 개체수 증가로 연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수부는 인공쉼터 주변 해역에 패류와 치어 등을 방류해 점박이물범을 배불리 먹이고 지역 어업인들의 어획량을 늘리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송명달 해수부 해양환경정책관은 “올해 인천시가 자체 예산을 편성해 점박이물범 보호를 위한 주민참여사업을 시작하는 등 점박이물범 보호 활동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면서 “정부가 주도해온 해양보호생물 관리사업이 주민·지자체 등 지역사회로 퍼져나간 모범사례로 평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