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액 후 슬쩍 늘리는 ‘요요예산’ 되나
by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한국판 뉴딜’ 재원, 정부가 뼈 깎는 각오로 지출 줄여 마련?
‘불필요’보다 민원·지연 등 이유로
대부분 기존 사업 예산에서 삭감
이후 증액 나선 전철 밟을까 우려
지출 유예되며 내수경기만 악화
“지출 구조조정으론 재정 확보 한계
정치권, 국민에 증세 설득 나서야”
정부가 ‘뼈를 깎는’ 각오로 지출을 줄이며 한국판 뉴딜 등의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시간이 지나 지출이 더 불어나는 ‘요요예산’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 국민 고용보험 제도 등 새로운 사회안전망을 설계하려면 지출 구조조정만으로는 향후 지속적 재정소요를 감당할 수 없으므로 정치권이 중장기적 시야를 갖고 증세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월부터 재정혁신TF 겸 지출구조개혁단을 운영하며 고강도 지출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는 31일까지 각 부처가 기재부에 제출해야 하는 2021년 예산안에는 재량지출 사업의 10%를 의무적으로 삭감해야 한다고 부처들에 통보한 상태다.
이 같은 ‘허리띠 졸라매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부터 저성장과 양극화 극복을 위해 적극적 재정정책을 펼치겠다고 선언하면서 ‘지출 구조조정’을 재원 마련 수단으로 제시했다. 우선순위가 떨어지거나 불필요한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해 5년 동안 60조2000억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2017년 8월 기재부는 ‘2018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11조5000억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가 4년 전 지출 구조조정 대상으로 거론한 사업이 현재도 없어지지 않거나 오히려 이듬해부터 예산이 늘어난 것으로 27일 경향신문 취재결과 확인됐다. 불필요하다기보다 민원이나 절차적 이유로 진척이 늦어지던 사업의 예산을 삭감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에서만 4조4000억원이 삭감됐는데 대부분 기존 사업 예산이었다. 학자 출신의 정부 관계자는 “불필요한 SOC 사업 낭비를 막지도 못한 데다, SOC 사업을 급격하게 삭감하면서 이듬해 건설경기 침체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산업단지 환경조성 예산은 국회의 본예산 심의 단계에서 2016년 700억원에서 2017년 685억원, 2018년 566억원으로 점차 줄어들었지만 2018년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거치면서 대폭 늘었고 올해는 4310억원이 배정됐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소상공인 지원(융자) 예산도 2018년 대폭 감액됐으나 이듬해부터 다시 늘어나 ‘한 치 앞도 못 보는 구조조정’이라는 핀잔을 받았다.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 재원 마련 과정에서 단행한 지출 구조조정 역시 기존 문제점을 답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긴급재난지원금 마련을 위한 2차 추경을 편성하면서 국비 12조2000억원 가운데 8조8000억원을 지출 구조조정으로 마련했다. 나라살림연구소는 “SOC 사업 감액 등 올해 지출을 차년으로 미룬 것으로, 재정건전성에는 영향이 없고 내수경기만 악화시킨다”며 “국채 발행 금액 축소라는 형식적 목표만 달성하는 구조조정”이라고 논평했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는 “정부가 10년 이상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해왔기 때문에 구조조정만으로는 재원을 마련할 여지가 크지 않다”며 “지출 구조조정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정말 불필요한 사업 대신 당장 줄여도 문제가 되지 않으면서 이익단체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항목들이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에게 솔직하게 증세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