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은 ‘한국 정서·풍경 담긴 애니’를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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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국제애니페스티벌에 ‘무녀도’ 초청된 안재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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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훈 감독의 스튜디오 건물 옆에는 <소중한 날의 꿈>의 한 장면이 벽화로 그려져있다. 안 감독은 “우리 터전에서 생긴 이야기, 한국 사람의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잘 그려내고 싶고, 나아가 외국사람들이 한국 문화와 만나는 계기가 된다면 더 좋겠다”고 말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23년 전 스튜디오 ‘연필로 명상하기’ 설립하고 장편 애니 외길
국제행사 초청 자체가 의미…첫 뮤지컬 형식·연말 국내 개봉

“우리 터전에서 생긴 이야기, 한국 사람과 정서를 잘 그려낸 애니메이션도 나올 수 있구나. 그런 화두를 던지는 게 제 역할인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반응이 있지 않더라도 10년, 20년 뒤에는 평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안재훈 감독(51)은 1998년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23년째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 창작의 길을 걷고 있다. 많은 관객과 만나고, 충분한 투자를 받기 힘든 현실 속에서도 안 감독은 여전히 “가치와 의미”를 찾아 한국 애니메이션의 기반을 닦고 있다. 김동리의 단편 문학을 원작으로 한 <무녀도>로 올해 제44회 프랑스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장편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된 안 감독을 지난 26일 서울 남산자락에 위치한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안 감독은 “안시 페스티벌을 통해 한국 애니메이션이 언급된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며 “세계의 관객들은 여전히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기대하고, 볼 마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올해로 44회째인 이 행사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일본의 히로시마, 캐나다의 오타와에서 열리는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와 함께 세계 4대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로 꼽힌다. 안 감독의 작품이 경쟁 부문에 진출한 것은 2011년 <소중한 날의 꿈>에 이어 두 번째다.

안 감독은 “한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각각 작품으로 담아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2014), <소나기>(2017)에 이어 <무녀도>까지 한국 단편 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겨온 것도 “한국 고유의 빛깔을 내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에 단편 문학이 좋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라고 밝혔다. 안 감독은 “사실 어릴 때는 디즈니·픽사 작품을 보고, 좀 커서는 지브리 작품을 보게 된다. 그러다보니 한국 애니메이션은 한국인과 같이 성장하지 못하고 우리 풍경이 낯설어져 버린 게 사실”이라며 “제 작품이 한국 애니메이션의 공백을 채워줄 수 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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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무녀도>.

<무녀도>는 처음으로 뮤지컬 형태를 도입했다. 주인공 모화의 목소리는 뮤지컬 가수 쏘냐가 맡았다.

안 감독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이번 안시 페스티벌은 온라인으로 개최되는데, 현지에서 오프라인으로 상영했으면 국악기를 바탕으로 한 창작 뮤지컬로 반응이 엄청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무녀도>는 올해 말쯤 국내 관객과 만난다.

한국 근대문학을 통해 한국의 과거를 보여줬다면, 차기작 <살아오름: 천년의 동행>은 오늘의 서울을 담아낸 작품이다. 안 감독은 “20대 대한민국 청년의 모습을 담으려고 했는데, 손쉽게 위로나 응원을 주기보다는 작품을 보고 난 뒤에 말 그대로 다시 살아오르는 마음이 들고 내가 발붙이고 사는 서울이 다시 눈에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무대가 되는 서울 정동길을 500번 이상 방문하고, 일일이 세필로 수작업을 해서 서울의 곳곳을 담아냈다. 안 감독은 “한국 사람이 그린 한국의 풍경에 진심을 다하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안 감독은 그동안 자신이 작업해온 애니메이션의 가치와 의미는 물론 산업적 가능성까지 신뢰하는 투자자가 나온다면, 해낼 준비는 되어있다고 했다.

“나훈아나 주현미나 김광석이 있었으니까 오늘날 BTS도 나온 게 아닐까요. 제가 던진 화두를 후대에서 더 단단히 만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제가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주현미나 나훈아 선생님 정도의 역할이면 좋겠네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