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임선혜 “우연과 인연이 쌓여 필연이 됐다”…‘아시아의 종달새’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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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혜 ‘유럽 데뷔 20주년’…그의 오늘을 가능하게 해준 인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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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데뷔 20주년을 맞은 임선혜는 “10년 뒤에는 나도 누군가의 아름다운 인연이 되고 싶다”고 했다. EMK엔터테인먼트 제공

어린 시절 스승인 최대석 테너
재능 확신하게 해주신 선생님

‘고음악 거장’ 헤레베헤 지휘자
나를 대타로 발탁해 데뷔시켜

나도 모르는 ‘나’ 끌어낸 야콥스
동양인에겐 잘 주지 않는 작품
‘바흐 수난곡’ 제안하고 녹음도

1999년 12월, 스물세 살의 소프라노 임선혜는 벨기에 브뤼셀로 가는 새벽 기차를 타고 있었다. 고음악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지휘자 필립 헤레베헤(73)의 오디션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모차르트의 모테트 ‘기뻐하라, 환호하라’와 <c단조 미사> 중 ‘성령으로 잉태하사’를 노래할 예정이었던 소프라노가 무대에 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독일 카를스루에 음대 학생이던 임선혜에게 찬스가 왔다. 당시 오디션을 주선한 매니저가 임선혜에게 “<c단조 미사>의 아리아를 해봤어?”라고 묻자, 이 당돌한 유학생은 “아, 한국에서 여러 번 해봤죠!”라고 둘러댔다. 그만큼 무대가 욕심났다. “카를스루에에서 브뤼셀까지 달려가는 7시간 동안 (처음 불러보는) 악보를 달달 외웠다.”

당돌한 도전은 성공했다. 헤레베헤는 이 공연 직후, 베를린 콘체르트 하우스에서도 모차르트의 아리아를 부르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노래하는 작은 새’ ‘아시아의 종달새’(임선혜의 별칭)는 그렇게 유럽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20년간 수많은 공연과 음반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우리 시대의 위대한 소프라노 가운데 한 명”이라는, 확신에 가득한 찬사를 내놨다.

유럽 데뷔 20주년을 맞은 임선혜를 전화로 만났다. “당신의 20주년을 상징하는 서너 개의 키워드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는데, 임선혜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아름다운 인연들에 대해 말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의 말을 1인칭으로, 최대한 가감 없이 전한다.

내 데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우연이었다. 그게 데뷔인지도 몰랐다.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며 삶은 예측할 수 없다. 나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우연과 대면한다. 그 우연들 덕분에 좌절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지닌 낙천성의 뿌리다. 그렇게 우연과 우연이 쌓여 필연이 된다는 걸 알고 있다.

그 필연을 인연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중에서도 어린 시절 스승이셨던 테너 최대석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 강원도 철원에서 나고 자란 고등학교 2학년은 재능에 대한 확신을 도무지 갖지 못했다. 그러다가 선생님을 만났다. 내 노래를 들으시더니 “어디서 이런 친구가 왔는고!”라며 환호작약하셨다. “너는 당연히 성악을 해야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나는 뭔가 두려워 우물거리며 말했다. “저는 학교 성적이 괜찮은 편이어서 그냥 일반 대학 가도 됩니다. 집안 형편도 여의치 않고요.” 그러자 선생님은 “아무것도 가져올 필요 없다”고 하셨다.

선생님과 공부하면서 음악가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 음악가는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사람이라는 편견은 선생님의 소탈하고 따뜻한 성품에 용해됐다.

스승은 나의 유럽 데뷔 2년차에 돌아가셨다. 나중에 사모님이 말씀하셨다. “병석에 누워계실 때 선혜가 노래한 하이든의 <에스테르하지 칸타타>를 날마다 들으셨단다.” 아, 선생님! 지금 베를린의 내 집에는 작게 축소한 선생님 영정이 있다. 그 사진을 냉장고 도어에 붙여놨다. 지금도 날마다 바라본다.

‘음악적 멘토’라고 부를 수 있는 우리 시대의 거장들도 있다. 나는 필립 헤레베헤를 통해 유럽에 알려졌으나, 개인적으로는 레네 야콥스(74)에게 더욱 깊은 인연을 느낀다. 2006년 거장 야콥스는 모차르트 오페라 <돈조반니>의 ‘체를리나’ 역으로 나를 캐스팅했다.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렸던 이 공연은 세계 여러 나라에 생중계되면서 나를 ‘모차르트 소프라노’로 인식시켰다. 한동안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았던 ‘명랑 캐릭터’는 이 공연에서 연유한다. 얼마 후 야콥스는 역시 모차르트 오페라 <이도메네오>의 ‘일리아’를 제안했다. 체를리나와는 전혀 다른, 서정적이고 비극적인 캐릭터다. 야콥스는 그렇게 나도 잘 모르는 ‘나’를 이끌어냈다.

그가 모차르트 이후에 또 제안한 것은 바흐였다. 어느 날 연습실에서 <마태수난곡>의 아리아를 노래해보라고 하더니, 직접 피아노 앞에 앉아 반주했다. 사실 유럽에서 바흐의 수난곡은 동양인 소프라노에게 웬만해선 돌아오지 않는 작품이다. 그날 연습실에서 야콥스가 말했다. ‘선혜, 내가 수난곡을 지휘할 때 꼭 같이해주겠니?’ 그 말은 2013년 <마태수난곡> 녹음으로 현실화됐다. 3년 뒤 <요한수난곡>을 또 같이했다.

오스트리아 지휘자 만프레트 호네크(62)는 비교적 최근 만났지만 많은 영감을 준다. 그가 지휘하는 투명한 모차르트를 듣고 있노라면, 굳이 모차르트를 고악기로 연주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현재 그는 미국 피츠버그 심포니 상임지휘자다. 실력만으로 보자면 유럽 일급 오케스트라에 있어야 할 사람이다. 어느 날 대화 중 그 마음을 읽은 호네크가 말했다. “선혜, 죽은 뒤에 하늘에 갔을 때 신이 나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까? 너는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했는가, 과연 그렇게 물으실까?” 그때의 표정과 눈빛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가 전해준 메시지는 ‘커리어를 위해, 잘나가기 위해 음악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잠언이었다. 이 진실한 음악가를 보면서 나는 희망과 용기와 위로를 얻는다. 그렇게 내가 만난 수많은 인연들이 모여 지금의 ‘소프라노 임선혜’가 됐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아름다운 인연에 목마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