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 관리 때문에 벌어진 비극…현실 모르는 현행법
"제발 강력히 처벌해주세요." 경비원 고(故) 최희석 씨의 절규
멈추지 않는 '경비원의 비극'…현실 모르는 현행법 '무용지물'
법이 정한 경비 업무만 하면 '대량 실직' 우려…보완책 필요
입주민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비원 고(故) 최희석 씨.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7일째인 오늘(27일), 가해자로 지목된 입주민 심 모 씨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대체로 부인하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진 심 씨는 검찰로 가는 길에도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현행법 어디에도 '주차 관리' 업무 없지만…
비극은 지난달 21일, 최 씨가 아파트 내에서 주차 관리 업무를 보면서 시작됐습니다. 유족과 입주민들은 최 씨가 이중주차된 심 씨의 차를 움직인 뒤 폭언과 폭행이 이어졌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차 관리 업무는 현행법이 정한 경비원의 업무가 아닙니다.
현행 경비업법은 경비원에게 "도난ㆍ화재 그 밖의 혼잡 등으로 인한 위험 발생을 방지하는 업무"만 하도록 했습니다. 현행 공동주택관리법 역시 "업무 이외에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해선 안 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우리가 아파트에서 흔하게 보는 쓰레기 분리수거와 청소, 화단 관리, 택배 보관 모두 경비원의 업무가 아니란 말이지만, 현실에선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법만 지켜지면 '경비원의 비극' 사라질까?
법이 정한 업무만 한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주차 관리와 청소 등을 하는 별도의 인력을 고용하게 되면 인건비가 듭니다. 결국, 기존 경비 인력을 줄여 인건비의 총량을 맞출 수밖에 없고, 이는 경비원들의 '대량 실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대부분 고령인 경비원들이 막다른 골목에 놓이게 되는 겁니다.
단속 기관도 이런 현실 때문에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찰청은 지난해 말, 전국 일선 경찰서에 공문을 보내 올해 6월부터 경비원이 경비 업무가 아닌 일을 하면 단속하겠다며 5월 31일까지 행정계고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현장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기존 방침을 바꿔 단속 시점을 내년으로 미뤘습니다.
'주민 갑질' 막자…뒤늦게 쏟아지는 대책
최 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각종 대책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그제(25일)부터 아파트나 대형 건물 등의 각종 갑질 행위에 대한 특별 신고 기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접수 사건은 1개 팀을 전담팀으로 지정해 수사하도록 하고 피해자 보호를 위해 실명이 아닌 가명으로 조서를 작성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피해자가 원하면 직접 방문해 피해 사실을 청취할 예정입니다.
서울시도 아파트 경비원은 경비 업무만 볼 수 있도록 '공동주택 관리규약준칙'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재 자치구의 검토 의견을 받고 있으며 최종안을 결정·심의한 뒤 이번 달 안으로 공동주택 관리규약준칙 개정을 완료할 예정입니다. 최 씨가 일했던 아파트가 위치한 강북구도 관내 공공주택을 대상으로 긴급실태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유족을 통해 공개된 음성 유서에서 최 씨는 자신처럼 억울한 일을 당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힘없는 경비원을 때리는 사람들을 강력히 처벌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입주민 심 씨를 처벌하는 건 이제 법의 영역으로 넘어갔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경비원 처우 개선과 함께 대량 실직을 막을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