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 일삼는 마사회 부끄러웠다” 얼굴 드러낸 공익제보자
by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김정구씨 ‘고객만족도 조작’ 알린 뒤 6개월째 직위해제
우호고객 대상 만족도 조사
조직관행 바뀌길 원해 제보
돌아온 건 직위해제와 고소
권익위도 “보호 대상 안 돼”
한국마사회의 고객만족도(PCSI) 조작 정황을 언론에 알린 제보자가 6개월째 직위해제 상태로 공익제보자 신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제보자는 지난 2월 국민권익위원회에 보호를 요청했지만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
김정구씨(51)는 지난해 1월2일 마사회 제주지역본부 고객안전부장으로 발령받았다. 그는 발령 4일 뒤 기획재정부가 그달 중순 실시하기로 예정했던 공공기관 PCSI 현장조사에 ‘철저히 대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2018 고객만족도 조사 대응 계획(안)’ 문서에는 “부서별로 우호 고객을 최대한 확보, 우호 고객이 답변할 수 있도록 전 부서 협조”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씨는 2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PCSI는 무작위로 표본 고객을 선정해 진행하는 것이 기본이다. 마사회가 우호적인 고객을 선별한 건 좋은 점수를 줄 사람만 골라서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는 뜻”이라며 “내 일터가 조작을 일삼고 있다는 게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김씨는 기사가 나오면 마사회장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언론에 제보했다. 일요신문은 해당 제보를 지난해 4월27일 보도했다.
일은 기대했던 것과 달리 진행됐다. 지난해 5월10일, 김낙순 마사회장 이름으로 ‘관련없는 문서 두 건을 유출해서 기관 평가에 악영향을 미치게 했다. 유출 경위를 상세히 조사해 적극 대응하라’는 취지의 지시사항이 내려왔다. 며칠 뒤 김씨는 전산실에서 ‘문서 두 건 유출자로 당신이 지목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씨는 같은 달 25일 마사회 감사실에 제보자가 자신임을 밝히면서 마사회의 PCSI 조작 여부를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감사실은 김씨의 신고 내용이 아닌 내부 정보 유출을 문제 삼으며 인사과에 김씨의 중징계 처분을 요구했다.
“진실 밝힐지, 죽거나 망할지
내 삶은 궁지에 몰리게 돼
이런 환경서 누가 제보할까”
마지막 각오로 신상 공개
이후 1년간 김씨의 싸움이 이어졌다. 지난해 11월과 올해 2월 두 차례에 걸쳐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김씨는 부장직에서 보직해제됐다. 징계 의결 중임을 사유로 지난해 12월1일 직위해제 조치를 받았다. 마사회는 지난 2월 “감사결과 당시 언론 제보 내용은 사실과 다름을 확인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3월4일엔 김씨를 ‘공공기록물 보전에 관한 법률 위반 및 문서 등 손괴’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김씨는 지난 2월19일 권익위에 PCSI 조작 등 마사회 비리 의혹 6건을 신고하며 공익신고자 보호 요청을 했다.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는 지난 4월1일 ‘권익위에 마사회의 고객만족도 조사 조작 의혹 신고자에 대한 신분 보장 조치 촉구’ 성명을 발표했다. 권익위는 지난 4월13일 ‘언론 제보는 부패방지권익위법상의 부패행위 신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등의 취지로 회신했다.
김씨는 “직위해제된 상태라 월급이 계속 삭감돼 들어온다. 그렇다고 직업이 없는 것은 아니니 재취업하거나 투잡을 뛰기는 힘들다”며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일부 동료·후배들에게서 ‘힘내라’는 응원을 받았습니다. 그들도 보고 있는 거죠. 진실을 밝히는 데 성공할지 아니면 그냥 혼자 죽거나 망할지. ‘제보는 짧고 고통은 길다’는 말처럼 우리 사회에서 공익제보자는 늘 궁지에 내몰려 왔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누가 조직의 부패·비리를 제보하겠습니까.”
김씨는 27일 오후 1시 한국마사회 적폐청산 시민대책위원회가 개최한 ‘감사원의 한국마사회 제대로 된 감사 촉구 기자회견’에 참여해 자신의 얼굴과 신분을 공개했다. 김씨는 “마사회의 압박을 버티며 언론에 제보했지만 바뀐 것이 없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건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