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컬렉션' 보물 2점 경매서 모두 유찰, 간송미술관 추진 계획 차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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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케이(K)옥션 경매에서 유찰된 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부분). 케이옥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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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284호인 ‘금동여래입상’(부분). 케이옥션 제공.

‘문화재 독립운동가’로 평가받는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유족이자 간송미술문화재단(간송미술관) 설립자들이 경매에 출품한 삼국·통일신라시대 불상 2점(보물 284호·285호)이 27일 경매에서 모두 유찰됐다.

이들 문화재는 이날 오후 케이(K)옥션 경매장(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열린 경매에서 시작가 15억원으로 출발했으나 응찰자가 없어 결국 유찰됐다.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인데다 수준 높은 소장품으로 유명한 ‘간송 컬렉션’의 첫 경매 출품작이란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으나 새 주인을 찾지 못한 것이다.

고미술계 관계자는 유찰 직후 “고미술계에선 경매 출품작이 사회적으로 주목받거나 화제를 모으면 ‘바람을 맞았다’는 표현을 쓰면서 응찰을 망설인다”며 “결국 사회적 주목 등에 따른 부담감이 응찰을 원하던 소장가들에겐 독이 되면서 응찰자가 나서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시작가 15억원은 기존 문화재들의 거래 수준으로 볼 때 그렇게 높게 설정된 가격으로는 보기 힘들다”며 “사립미술관이나 개인 소장가 등이 비공식적, 사적으로 간송미술관 측에 구입을 타진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미술계 관계자는 “한번 유찰된 출품작을 다시 출품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간송미술관 측은 향후 비공개적으로 매각 작업에 나서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간송미술관 관계자는 “이왕 출품된 것인만큼 낙찰됐으면 좋았을 것인데 당황스럽다”며 “향후 일정과 관련해선 할 말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케이옥션 관계자는 “유찰된 출품작의 경우 출품자에게 반환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출품작을 둘러싼 일정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경매에 나온 ‘금동여래입상’은 통일신라시대 초기인 7세기 중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은근한 미소를 띤 입과 얼굴·옷주름의 표현, 자유롭고 생동감 있는 자세 등이 특징이다. 보살을 형상화한 ‘금동보살입상’은 6~7세기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신라 지역인 경남 거창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백제 불상의 면모도 엿보인다. 두 손으로 보주를 받든 모습과 양옆으로 펼쳐나간 옷자락 등은 백제 불상으로 일본 호류지(法隆寺)에 소장된 ‘구세관음보살입상’과 유사한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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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284호인 ‘금동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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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285호인 ‘금동보살입상’.

경매 출품작들이 유찰되면서 전시와 문화사업, 기타 재산 등의 상속세 등으로 재정난을 겪어오던 간송미술관은 이른시기에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당분간 재정난 타개에 어려움을 겪게될 것으로 보인다. 간송미술관 관계자는 “이왕 출품된 것인만큼 낙찰됐으면 좋았을 것인데 당황스럽다”며 “재정난 타개 등과 관련해선 할 말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미술계 관계자들도 “간송미술관 측이 낙찰액, 소장품 구조조정 등 여러가지를 고려해 경매 출품작을 선정했을 텐데 유찰되면서 내부 계획의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경매에 나온 문화재들은 간송이 일제강점기 당시 수집·보존한 ‘간송 컬렉션’ 가운데 처음으로 경매에 나오면서 주목을 받았다. 소장품의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나 수량을 자랑하는 간송 컬렉션은 일제강점기에 ‘민족문화 수호’를 강조한 간송이 일본으로 유출될 위기에 처한 문화재들을 수집하면서 시작됐다. 간송은 1938년 국내 첫 사립미술관인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세우고 이를 소장했다. ‘문화재 독립운동가’로 평가받는 간송이 사재를 털어 평생 수집한 소장품은 총 4000여 건, 1만여 점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소장품 목록이 아직 명확히 공개되지는 않았다. 소장품 중에는 지정문화재만도 모두 48건이다.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가 12건, 보물이 32건, 시·도지정문화재가 4건이다.

■간송미술관, 내부 추진계획 차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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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유출될 위기에 처한 문화재를 수집·보존해 ‘문화재 독립운동가’이자 ‘민족문화 수호자’로 평가받는 간송 전형필의 생전 모습. ⓒ간송미술문화재단

간송미술관은 이날 2점의 소장품을 매각함으로써 그동안 누적된 재정난을 일부 해소하면서 앞으로 보다 안정적인 전시, 문화사업 등을 추진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매에 앞서 간송미술문화재단은 경매 출품과 관련, “안타깝고 민망한 일이지만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많은 고민 끝에 미래를 위해 어렵게 내린 결정”이라며 “이를 계기로 향후 2~3년에 걸쳐 관계 기관과 협력해 다목적 신축수장고 건립 등 시설을 대폭 개선하고 한층 더 활발하게 운영하기 위한 준비를 하려 한다. 대구시와 함께 대구간송미술관이라는 새로운 장소에서 제2의 도약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문화재청과 서울시 등은 현재 서울 성북동 보화각 인근에 간송 컬렉션 관리보존 등을 위한 수장고 건립을 추진 중이다. 또 국가등록문화재인 보화각 복원 지원도 계획한 상태다. 대구시는 내년 6월 완공을 목표로 간송 컬렉션의 상설전시 등이 이뤄지는 대구간송미술관 건립에 들어가 있다. 보화각 복원과 수장고 건립, 대구간송미술관 설립 등이 예정대로 이뤄지면 간송 컬렉션의 대중 전시와 다양한 관련 문화사업이 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문화계는 전망해왔다.

하지만 경매 출품작들이 모두 유찰되면서 간송미술관은 기존에 세워놓았던 내부 계획이 일정부분 차질을 빚게됐다. 미술계 관계자는 “비공식적으로 소장품 매각을 추진할 것으로 본다”며 “어쩔 수없이 매각이 이뤄질 때까지는 내부 추진 계획을 잠정 보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간송 컬렉션은 1962년 간송 타계 이후 유족들이 보화각을 간송 컬렉션의 학술적 연구를 담당하는 민족미술연구소, 전시·보존 중심의 간송미술관 체제로 재편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간송의 장남인 전성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1934~2018·서울대 미대 교수·보성학원 이사장)과 차남인 전영우 현 재단 이사장(80·전 상명대 미대 교수)을 거쳐 간송의 장손인 전인건 간송미술관장(49)까지 3대에 걸쳐 보존·관리되고 있다.

하지만 2013년 간송미술문화재단은 재단 설립 이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등에서의 외부 전시와 문화사업들을 추진하면서 재정적 압박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단 측은 “재단 설립이후 대중적인 전시와 문화사업들을 병행하면서 이전보다 많은 비용이 발생해 재정적 압박이 커진 것도 사실”이라고 밝힌 바있다. 특히 전성우 전 이사장이 2018년 타계하면서 부동산 등 상속재산에 대한 상속세 등도 부담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 측은 “전 이사장님이 소천하신 후 추가로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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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이 1938년 설립한 국내 최초의 사립미술관 보화각(현 간송미술관). 국가등록문화재 768호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기획재정부와 문화재청에 따르면,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국가지정문화재는 물론 비지정문화재, 공익법인인 미술관 등의 전시·보존품 등에 대한 상속세는 비과세되거나 상속세액의 징수가 유예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간송미술관측이 말하는 비용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 보듯 문화재의 상속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문화재 외의 재산에 대한 상속세를 말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다른 문화재청 관계자는 “소장 문화재들 중 국가지정문화재는 유족 개인으로 상속됐으며, 비지정문화재는 재단에 출연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신축 수장고 건립과 관련한 국비·지방비 등 44억6000여만원을 포함해 소장품 문화재보수정비사업 등으로 2018년 이후 총 47억8900만원의 예산이 지원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유찰에 따라 간송미술관 측이 밝힌 소장품 구조조정도 당분간 추진이 어렵게 됐다. 재단 측은 경매에 앞서 “모든 문화재가 소중하지만 불가피하게 소장하고 있는 불교 관련 유물을 매각하고 지금까지 간송미술관을 상징해온 서화와 도자, 전적이라는 중심축에 더욱 집중하려 한다”고 밝혀 간송 컬렉션의 구조조정을 시사했다.

■간송 컬렉션의 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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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70호인 ‘훈민정음’. 문화재청 제공. ⓒ간송미술문화재단

간송미술관은 삼성문화재단 삼성미술관 리움,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과 함께 소장품의 수준과 수량에 있어 3대 사립박물관으로 손꼽힌다. 간송 컬렉션의 수준은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 12건과 보물 32건 등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특히 서화와 도자, 전적들이 돋보인다.

서화 소장품으로는 혜원 신윤복과 겸재 정선의 화첩이 대표적이다. ‘혜원 전신첩’으로 불리는 ‘신윤복 풍속도화첩’은 국보 135호이며, 혜원의 ‘미인도’는 보물 1973호로 지정돼 있다. 겸재의 ‘해악전신첩’과 ‘경교명승첩’은 각각 보물 1949호·1950호다. 대나무 그림으로 유명한 이정과 조선 후기 대표적 풍속화가인 단원 김홍도를 비롯해 김득신·심사정 등의 작품도 국가지정문화재로 소장돼 있다. 또 서예 소장품은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의 작품이 있는데 보물로 지정된 추사의 ‘난맹첩’ 등과 원교의 ‘서결’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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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보물1973호). 문화재청 제공. ⓒ간송미술문화재단.

도자기로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명품 청자를 비롯해 걸작의 분청사기, 조선 백자 등이 소장돼 있다. 고려 청자로는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68호)를 비롯해 ‘기린형뚜껑 향로’ ‘상감연지원앙문 정병’ ‘오리모양 연적’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등이 국보다. 보물로는 ‘청자 상감포도동자문 매병’과 ‘분청사기 박지철채화문 병’ 등이 있다. 백자 소장품으로는 국보 294호인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과 보물인 ‘백자 박산형뚜껑 향로’ 등이 상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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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상감운학문 매병’(국보 68호). 문화재청 제공. ⓒ간송미술문화재단.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전적으로는 국보 70호인 ‘훈민정음(해례본)’을 비롯해 ‘동국정운 권1, 6’과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4, 5’ 등이 간송 컬렉션을 대표한다. 이밖에도 국보로 지정된 불교 미술품인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과 ‘금동삼존불감’ 등과 보물 579호인 ‘괴산 외사리 승탑’과 580호인 ‘문경 오층석탑’ 등도 있다.

■경매에 나온 보물들, 얼마에 팔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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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괘불탱’(보물 1210호). 문화재청 제공.

국보나 보물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지정문화재도 해외로의 반출은 엄격히 제한되지만 국내에서의 소유자들 사이의 매매는 법적으로 가능하다. 이에 따라 국가지정문화재도 그동안 공식적인 경매는 물론 비공식적으로 숱하게 소유권 거래가 이뤄져 왔다. 또 지금도 주요 고미술품 경매에는 낙찰 여부를 떠나 다양한 종류의 국보와 보물들이 경매에 출품되고 있다.

그동안 낙찰가격 등이 공식적으로 드러나는 경매를 통해 거래된 국가지정문화재는 주로 보물로 20여건에 이른다. 케이옥션·서울옥션 등 주요 경매에서 최고액 낙찰가는 35억2000만원에 낙찰된 ‘청량산 괘불탱’(보물 1210호)이다. 2015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낙찰된 이 괘불(불교의 야외 법회·의식 등에 사용되는 대형 불화)은 가로 4.42m, 세로 9.5m에 이르며 조선 영조 1년(1725년)에 조성됐다. 낙찰자는 사립미술관 운영자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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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우이선생진적’(보물 585호) 가운데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 문화재청 제공.

보물 제585호인 ‘퇴우이선생진적’은 2012년 케이옥션 경매에서 34억원에 낙찰됐다. 퇴계 이황과 우암 송시열 등의 글과 겸재 정선의 그림 등으로 엮어진 이 서화첩의 낙찰자는 삼성문화재단으로 확인됐다. 이 서화첩은 현재 1000원짜리 지폐에 실려 있는 겸재의 ‘계상정거도’가 수록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 18세기 활동한 승려화가 의겸의 작품인 불화 ‘의겸등필수월관음도’(1204호)는 18억원, 조선 숙종 때인 1681년 그려진 불화 ‘감로탱화’(1239호)는 12억5000만원),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인 전남 강진 다산초당에서 부인의 낡은 치마에 아들들을 위해 쓴 글을 모은 ‘정약용 필적 하피첩’(1683-2호)은 7억5000만원(국립민속박물관 소장)에 각각 거래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