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병영생활전문상담관 15년의 길 / 백종우
백종우 ㅣ 경희대 의대 교수·중앙자살예방센터장
군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에 대비해야 하며 병역은 헌법에 명시된 의무이다. 오늘도 많은 젊은 청년들이 학업과 직업을 멈추고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
군 존재의 목적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지만 때로 장병의 안전과 생명도 위협받는다. 군 내 인명사고 중 자살이 가장 높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자살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군의 특수성과 관련한 외상후스트레스, 우울증 등이 영향을 주는 대표적인 정신건강의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우리나라에서 20~30대 사망 원인의 1위도 역시 자살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약해서 그렇다는 일부의 평가는 통계로 볼 때 커다란 오해다. 1970년 군 사망자는 2310명, 자살사망자는 440명이었고 1980년까지도 사망자 970명, 자살자 391명에 이르렀다. 이에 대한 개선 요구는 꾸준히 있었으나, 2005년 훈련소에서의 가혹행위와 지피(GP) 총기사고 발생 이후 전문상담관 제도 도입 논의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2005년 7월부터 병영생활전문상담관 제도가 시범운영을 시작하였고 2008년부터 전군을 대상으로 확대 시행되어 올해 15주년을 맞이한다. 양적 질적으로 성장하여 2013년 199명이던 상담관이 2017년 말부터는 383명까지 확대되어 연대급까지 배치되었고 올해 말 기준 660명으로 증원되어 2022년에는 대대급 1명 수준으로 배치될 예정이라고 한다.
군 장병들이 병영생활전문상담관을 통해 자신의 고민과 정신건강의 문제를 언제든 상담할 수 있게 되면서 군 내 자살사망은 더 감소하였다. 상담관은 심리검사와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국방헬프콜을 통해 24시간 전화와 온라인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2018년 군 내 자살사고는 56건이었으며 군 자살률 10만명당 8.78명으로 일반인 자살률 26.6명과 비교해도 매우 낮은 비율이다.
병영생활전문상담관 제도는 장병 입장에서 정신건강 전문가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정신건강 문제의 최악의 결과인 자살을 예방할 뿐 아니라, 가장 예민하고도 중요한 시기에 도움을 요청하고 해결해가는 과정을 군 내부 시스템에 도입했다는 데 첫번째 의의가 있을 것이다. 상담관이 군 내에서 근무하고 고충을 듣게 되면서 병영문화를 개선하고 장병의 인권을 보장하는 데도 기여하였다. 간부의 입장에서도 힘들어하는 장병을 어떻게 대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상담관에게 협력과 조언을 구할 수 있어 상호이익이 된다. 복무 중 상담관을 통해 고민을 해결해본 경험은 이들이 사회에 진출해서도 각자의 분야에서 문제를 해결해가는 데 기여할 것이다. 병영생활전문상담관 제도의 소중한 성과는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도 이러한 시스템 도입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사례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파병부대의 경우 필수적으로 정신건강 전문가를 배치하고 있으며 대만도 우리와 유사한 제도를 운용하는 등 군 정신건강에 대한 투자는 세계적인 추세다.
지금 우리나라는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압도적 검사를 통해 바이러스를 찾아내고 어디든 찾아가는 역학조사관이 환자를 증상의 경중도에 따라 생활치료시설, 병원, 중환자실 등에 배치하면서 세계적으로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감염에서 역학조사관의 역할이 군 정신건강에서는 병영생활전문상담관의 책무이다. 군 내에서의 상담을 통해 어려움을 정확히 파악하고 경중도에 따라 군정신건강센터, 국방치유회복센터로 의뢰하는 체계가 구축된다면 군 정신건강 시스템도 세계적인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