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나라 걱정 그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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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27 18:00

문재인 대통령이 엊그제 말했다. "전시(戰時) 재정을 편성한다는 각오로 재정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자 여기서 ‘전시 재정’이란 무슨 말일까. 적국과 전쟁이 벌어졌을 때 일단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부가 거의 무한대로 돈을 끌어다 쓰는 상황을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군자금(軍資金)이나 전비(戰費)를 최대로 지출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상한선을 두지 않고 천문학적인 규모의 적자 국채를 발행해서 사상 초유의 빚더미 위에 올라앉을 수도 있는 상황을 말한다. 물론 개인과 민간 기업이 갖고 있는 사유 재산을 징발할 수도 있다. 대통령에게는 비상 권한이 있는데, 긴급명령권과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이 그것이다. 대통령의 입에서 ‘전시 재정’이란 말이 나왔을 때 그것은 무시무시한 말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코로나 사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4·15 총선 결과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 진짜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말씀을 받들어서 어제 이렇게 말했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빚을 내서라도 살리고 봐야 한다. 빚은 건강을 회복한 다음에 갚으면 된다." 김 대표의 말은 반절은 맞고 반절은 틀렸다. 그가 말한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은 사실은 암 환자다. 암 환자가 억지로라도 영양을 섭취하고 음식을 많이 먹는 것은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해 체력을 보강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와 집권 여당은 규제 개혁과 구조 조정 같은 수술을 받을 생각은 없고, 먹이기만 하려는 모양새다.

대통령과 여당 원내대표의 생각은 ‘빚내서 경제 살리자’로 요약할 수 있는데,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송강호씨네 가족을 보는 것 같다. 급기야 ‘좋은 채무론’까지 나왔다. 빚에는 나쁜 빚도 있지만 국가 재정을 건전하게 만드는 좋은 빚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 귀에는 마치 정부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국민 여러분, 한국 정부가 드디어 세계에서 처음으로 몸에 좋은 담배를 만들었습니다. 국민 여러분에게 하루 두 갑씩 공짜로 드릴 테니 맘껏 피십시오." 기업의 공장 기계가 멈춰 섰는데, 공장 부지를 담보로 빚을 내서 주주들에게 뿌리고 있는 꼴이다. 기계부터 돌려야 하고, 판로(販路)부터 개척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권은 5년짜리 ‘바지 사장’이지 절대 ‘오너’가 아니다. 오너는 국민이다. 바지 사장이 1,2차 추경으로 나라 빚을 24조원이나 끌어다 쓰더니, 이제 3차 추경으로 다시 40조원 빚을 내려고 한다. 그 빚은 바지 사장이 책임지는 게 아니다. 바지 사장은 이제 2년 뒤 나 몰라라 하고 회사를 떠날 것이다. 그 빚은 오너인 국민과 그 후손들이 두고두고 갚아야 한다.

바지 사장과 그 추종자들은 지난 총선 때 빚을 내서 돈 뿌리는 효과를 톡톡히 경험한 뒤끝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요즘은 과거사 뒤집기에 재미가 들렸다. 한명숙 사건 뒤집기, KAL기 폭파사건 뒤집기, 삼성전자 이재용 재판 뒤집기 등등을 선보이고 있는 중인데 급기야 ‘부관참시’라고 하는 동작동 국립묘지 뒤집기에 나서고 있다. 만약 반일(反日) 프레임에 한 번 더 불붙일 요량으로 국립묘지를 파묘(破墓)한다면, 올해가 경자년(庚子年)이니까, 그것은 ‘경자사화(庚子士禍)’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이제 6월이 되어서 수퍼 여당이 21대 국회를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헌법 뒤집기를 보게 될 것이다. 헌법 전문(前文)에 5·18도 집어넣고,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도 삭제할 것이다. 토지는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토지공개념, 기업의 이익은 함께 나눠가져야 한다는 이익공유제도 등장할 것이다. 7월이면 공수처가 출범하면서 검찰 뒤집기, 윤석열 뒤집기가 시작될 것이다.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뒤집기 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요즘 동료 기자들이나 지인들을 만나면 이런 말씀들을 한다. "이제 나라 걱정 그만 하자." 비록 반어법이지만 해서는 안 될 말인데, 우리도 모르게 내뱉고 만다. 김정은의 핵무기 그대로 두면 절대 안 된다, 나라 빚 마구 쓰면 절대 안 된다, 아무리 피를 토하듯 충언(忠言)을 해도 바지 사장은 들은 척도 안 하니 이제 그런 일일랑 관두고 개인 행복이나 찾자는 자조 섞인 말씀들이다. 쓴 소주잔을 부딪치면서 "개인행복!" "개행(個幸)!"을 외쳐보기도 하지만 뒷맛은 영 씁쓸하다.

나라 안보? 여러분은 이제 걱정 그만 하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그것 책임지라고 군인이 있고 국방예산이 있지 않은가. 국방예산의 3분의1 이상이 인건비다. 장교 인건비가 한 해에 4조~5조원쯤 된다. 부사관 인건비는 그보다 조금 더 많고, 사병 인건비는 그보다 훨씬 적다. 어찌 됐건 여러분의 세금으로 그 분들에게 봉급을 지불하고 있으니 여러분은 걱정을 좀 내려놓으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나라 안보, 나라 경제가 걱정이신가? 더 넓게 보면 우리나라 공무원이 170만 명쯤 되고, 그들에게 들어가는 인건비가 80조원이 넘는다. 모두 여러분이 내시는 세금으로 충당하는 돈이다. 그러니 여러분은 걱정 그만 하시라고 말씀 드린다. 다음 주면 21대 국회가 개원하는데, 국회의원 한 명이 4년 임기 동안 총 34억 원 나라 예산을 갖다 쓴다. 국회의원 한 명이 한 해에 8억5000만원을 쓰는 셈이다. 모두 여러분이 땀 흘려 일하고 내신 세금으로 주는 돈이다. 그러니 나라 안보, 나라 경제, 그들에게 맡겨 놓으시고, 여러분은 잠시 편안하게 개인 행복을 찾으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그렇다고 나라 걱정을 안 하실 여러분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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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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