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모두 정전협정 위반'…무엇이 국방부·유엔사 엇박자 불렀나

北 조사없이 '반쪽' 조사 결과 공개…의도 놓고 분분
軍 도발 대응하고 '우발적' 주장이 '위반' 판단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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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화살머리 고지 GP에 휘날리는 태극기와 유엔기. /뉴스1 DB

유엔군사령부가 지난 3일 중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내에서 벌어진 북한군 총격 및 한국군의 대응 조치에 대해 양측 모두 정전협정을 위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 두고 북측에 대한 조사 없이 한국군 자체 조사와 배치되는 내용을 세부적으로 공개한 사실을 놓고 비판이 제기된다.

유엔군사령부가 이같은 조사결과를 공개한 의도를 놓고 일각에선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까지 연결 지으며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연합사는 전작권 환수 이후 한국군의 지휘를 받게 될 미측이 유엔사 권한 확대를 통해 미래연합사령부를 사실상 통제하려 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같은 차원에서 유엔사가 '존재감'을 보여주기 위해 국방부와 엇박자를 내고, 남북 모두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결론을 내놓은 것으로 의심하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반해 북측이 조사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GP 총격의 우발성 여부를 판단할 수 없었고 이를 토대로 북측의 4발의 총격에 남측의 30여발의 응사를 '정전협정 위반'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즉 유엔사가 할 수 있었던 역할은 사실상 이 정도뿐이었다는 현실적인 목소리도 군 안팎에서 나온다.

아울러 GP 초기 대응에 있어 북측의 4발의 총격에 30여발의 응사는 도발에 대한 대응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군이 '북측의 우발적 총격'이라고 주장한 점이 '정전협정 위반' 판단을 불러왔다는 해석도 있다. 군 스스로 '우발 총격'을 인정하는 순간 유엔사로선 무리한 대응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 두 가지 논란…'北 우발성과 韓 대응사격'

이번 사태를 둘러싼 논란은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우선 북한군 총격의 우발성 여부다. 합동참모본부는 현장 상황과 대북 정보를 종합해 우발적 사건으로 판단한 반면, 유엔사는 북한군이 조사에 임하지 않았단 이유로 판단 자체를 유보했다.

다음으로는 한국군이 대응사격 과정에서 정전협정을 위반했는지다. 합참은 '우리 군 현장부대는 대응 매뉴얼에 따라 적절하게 조치했다'는 평가를 내놓았지만, 유엔사는 '한국군의 총격은 정전협정 위반에 해당된다'고 못 박았다. 북한군의 총탄은 4발이 발사된 반면 한국군은 30여발로 응사해 '비례성의 원칙'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보고서는 북측에 대한 조사없이 한국군 및 GP 현장부대에 대한 조사만으로 작성됐다. 유엔사는 "북한군에 총격 사건과 관련한 정보 제공을 요청했지만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며 이를 인정했다.

우리 정부가 문제 삼은 부분도 이 지점이다. 국방부는 유엔사 발표에 대해 "북한군의 총격에 대한 실제적 조사없이 발표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유엔사가 우리 군의 주장대로 '우발적 상황'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양측 모두의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판단을 뒤엎을 수 있을 지는 의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보다 유엔사가 남북간 민감한 문제를 북측에 대한 조사없이 공개한 사실 자체에 비판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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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B. 에이브럼스 유엔군사령부 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 2019.7.27/뉴스1

◇유엔사 보고서 발표 배경은?

유엔사는 비무장지대 내 군사충돌이 발생했을 시 이를 조사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는 총격이 벌어진 다음 날 곧바로 다국적 특별조사팀을 현장에 파견했다. 물론 북한군은 여기에 응하지도, 답변을 내놓지도 않았다. 

북한이 유엔사 활동을 무시한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이미 북한은 지난 2013년 제3차 핵실험 이후 도발수위를 높여가던 과정에서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한 바 있다. 정전협정을 없었던 일로 하겠다는 건 협정문에 서명한 유엔사의 존재 자체도 부정한다는 뜻이다.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유엔사가 조사 활동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지난 2015년 목함지뢰 사건 당시에도 북한군은 유엔사 조사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오히려 보고서에서 주목할 점은 북한군 총격이 고의적일 가능성을 열어둔 부분이라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유엔사는 "북한군 총격 4발이 고의적이었는지, 우발적이었는지는 확정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다"며 판단을 보류했다.

이러한 문구는 사건 발생 직후 총격은 우발적이라고 평가한 한국군과 이에 동조했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입장을 동시에 반박한 모습이다. '북한 감싸기'라는 비판까지 받았던 합참보다 유엔사 보고서가 더 객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유엔사가 도발 주체를 북한군이라고 명시하지 않은 점"이라고 지적했다.


wonjun4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