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강원 화천군이 전국 최고 수준의 재난지원금 주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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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악재가 이어지다 보니 지역 상권 전체가 사실상 빈사상태에 빠졌습니다. 오죽하면 재정상태가 열악한 자치단체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지원책을 마련했을 까요?”

27일 오전 강원 화천군 화천읍 중앙로 4길에 자리잡고 있는 ‘화천전통시장’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썰렁했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재난지원금 우리동네에서 쓰자. 팍팍’이란 글이 적힌 현수막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음식점, 부식가게, 슈퍼, 옷가게 등 97개 점포가 몰려 있는 시장 골목안에선 좀처럼 손님을 찾아볼 수 없었다.

코로나19 여파로 군부대 장병의 외박·면회 등이 통제된 데다 감염에 취약한 노인들도 외출을 꺼리면서 유동인구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김현용 화천전통시장 조합장(63)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시장 전체의 매출이 평소 10분의 1수준으로 떨어진 것 같다”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어 “군 장병들의 발길이 끊기고, 외지 면회객도 사라지다 보니 음식점과 숙박업소 등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며 “이들 업소의 영업부진은 부식가게, 슈퍼 등에 연쇄적으로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점포를 둘러보자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는 김 조합장의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평소 외출·외박을 나온 군 장병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시장 내 몇몇 국밥집엔 지역주민 2~3명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27사단과 15사단 예하 군부대와 입접해 있는 화천군 사내면 상권의 경기침체 현상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류희상 화천군의원(57)은 “사내면의 지역경제는 사실상 마비 상태다. 올들어 180여개 점포 중 10여개가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류 의원은 “이 지역 200여개 민박·펜션의 절반 가량 매물로 나왔다”며 “2022년 27사단이 해체되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 뻔하다”고 했다. 지난 겨울 화천산천어축제가 흥행부진을 면치 못한 상황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 강화에 따른 외부인 출입 통제와 코로나19 사태, 국방개혁에 따른 부대 해체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사실상 화천 지역경제가 공황상태에 빠진 셈이다. 화천군은 지난해 산천어축제 때 외국인 13만명을 포함해 184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해 1300억원대의 직접경제유발효과를 거뒀다. 하지만 올해는 이상기후로 얼음이 제대로 얼지 않아 축제 진행에 차질을 빚으면서 42만명을 유치하는데 그쳤다. 지역경제 회생을 위해 고심을 거듭하던 화천군은 최근 소상공인과 주민들을 위해 파격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했다. 코로나 19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1850개 소상공인 업소에 100만원의 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하고, 전·월세 부담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임차 소상공인 850명에게는 100만원씩을 추가로 지원키로 했다. 또 1만2506세대의 전 주민에게 1인 가구 30만원, 2인 가구 50만원, 3인 가구 70만원, 4인 가구 90만원 등 가구원 1인이 증가할 때 마다 20만원씩 추가해 긴급 재난지원금을 지급키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4인 가구 임차 소상공인의 경우 긴급재난지원금 90만원과 경영안정자금 100만원, 세입자 추가 지원금 100만원에 정부의 재난지원금 100만원을 더해 최대 390만원까지 받을 수 있게 됐다.

이같은 지원에 따른 화천군의 예산 부담액은 긴급재난지원금 62억원, 소상공인 경영안정자금 27억여원, 정부 재난지원금 분담액 5억원 등 모두 94억원 가량이다. 이는 지역주민 1인 당 약 38만원 꼴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올해 화천군의 재정 자립도는 8.8%로 전국 지자체 평균인 45.2%, 강원도 평균인 25.8%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최문순 화천군수는 “녹록치 않은 재정형편에도 전국 최고 수준의 지원금을 지급키로 한 것은 주민들이 실의에 빠질 정도로 지역경제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이다”며 “토목·건축 사업을 뒤로 미루는 등 사업의 우선순위를 조정해 재난극복에 필요한 재원부터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